계약서 맨 뒤에 흔히 붙는 한 줄이 있습니다. 위반한 당사자는 계약금의 두 배를 지급한다, 또는 지연 1일당 계약금액의 1000분의 3을 지급한다는 문구입니다. 분쟁이 터지면 이 한 줄이 사건 전체의 금액을 정합니다. 민법 제398조는 이런 약정의 성격과 한계를 다섯 개 항으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조항이 있다고 늘 그대로 인정되는 것도 아니고, 없다고 아무것도 못 받는 것도 아닙니다.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정리합니다.
예정을 해 두면 손해를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제398조 제1항은 당사자가 채무불이행에 관한 손해배상액을 예정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이 제도의 실익은 증명 부담에 있습니다. 예정이 없으면 채권자는 실제로 얼마의 손해를 입었는지를 자료로 증명해야 하는데, 공사 지연이나 계약 파기로 입은 손해는 계산과 증명이 매우 어렵습니다. 예정 조항이 있으면 채무불이행 사실만 증명하면 약정된 금액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실제 손해가 그보다 적었다고 항변해도 원칙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반대로 실제 손해가 더 컸다고 해도 예정액을 넘어 청구하기 어렵습니다. 초과 손해까지 받으려면 계약서에 그 취지를 따로 정해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계약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이 조항 한 줄을 어떻게 쓰느냐가, 분쟁이 생겼을 때 몇 달의 입증 작업을 대신하게 됩니다.
위약금은 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된다
제4항은 실무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조항입니다. 위약금의 약정은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합니다. 계약서에 위약금이라고만 적어 두었다면 별도의 사정이 없는 한 배상액의 예정으로 해석된다는 뜻입니다. 이 추정이 중요한 이유는 위약금에는 또 다른 성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위약벌은 손해배상과 별개로 제재를 가하는 성격이어서, 위약벌로 인정되면 채권자는 위약벌을 받고 실제 손해도 따로 청구할 수 있습니다. 채권자에게 훨씬 유리하지만, 법원은 위약벌로 보려면 그러한 취지가 계약에 분명히 드러나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뒤에 볼 감액 규정이 위약벌에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 대신, 과도한 위약벌은 공서양속 위반으로 일부 또는 전부가 무효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계약서를 쓸 때 성격을 명시하지 않으면 결국 추정에 따라 배상액의 예정으로 처리된다는 점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법원이 깎을 수 있다 - 제2항의 감액
제2항은 손해배상의 예정액이 부당히 과다한 경우에는 법원이 적당히 감액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이 조항 때문에 계약서에 적힌 금액이 그대로 인정되지 않는 사건이 많습니다. 감액은 당사자가 주장하지 않아도 법원이 직권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실무에서 고려되는 사정은 채권자와 채무자의 지위, 계약의 목적과 내용, 예정액을 정한 경위, 실제 손해액과 예정액의 차이, 그리고 거래 관행입니다. 특히 실제 손해에 비해 예정액이 지나치게 크다는 점이 드러나면 감액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청구하는 쪽에서도 실제로 어느 정도의 손해가 있었는지를 함께 제시하는 편이 유리합니다. 반대로 감액을 구하는 쪽은 예정액을 정할 당시 협상력의 불균형이 있었다는 사정, 위반의 정도가 경미하다는 사정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합니다. 막연히 과하다는 주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지체상금 - 건설 현장의 대표적 예정 조항
공사도급계약의 지체상금은 배상액의 예정이 실무에서 가장 정교하게 다루어지는 영역입니다. 계산의 뼈대는 계약금액에 지체상금률을 곱하고 지체일수를 곱하는 것인데, 다툼은 언제나 지체일수를 어떻게 세는가에서 생깁니다. 발주자의 귀책으로 공사가 멈춘 기간, 설계 변경으로 늘어난 기간, 천재지변이나 인허가 지연으로 인한 기간은 지체일수에서 제외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공사 일지, 작업 중지 지시서, 설계변경 승인 문서, 기상 자료가 그대로 증거가 됩니다. 또한 완공의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지도 쟁점입니다. 사용승인일인지, 실제로 사용 가능한 상태가 된 날인지에 따라 며칠에서 몇 달까지 차이가 납니다. 지체상금 역시 제2항의 감액 대상이므로, 총액이 공사대금에 육박할 정도가 되면 법원이 조정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현장의 기록이 곧 금액이라는 말이 가장 잘 들어맞는 분야입니다.
해제와의 관계, 그리고 금전이 아닌 예정
제3항은 손해배상액의 예정이 이행의 청구나 계약의 해제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고 정합니다. 예정액을 청구했다고 해서 이행을 구할 권리나 해제권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위약금을 받으면 계약이 끝난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예정액을 받으면서 동시에 계약의 이행을 구할 수 있고, 해제한 뒤에도 예정액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제5항은 범위를 넓힙니다. 금전이 아닌 것으로 손해의 배상에 충당할 것을 예정한 경우에도 앞의 네 항이 준용됩니다. 물건의 인도나 권리의 이전을 위약의 효과로 정한 약정도 같은 규율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실무에서는 계약금 몰취나 배액 상환 약정, 주식 양도 약정, 잔여 물량 인수 약정 같은 형태로 나타납니다. 형식이 무엇이든 기능이 손해배상의 대체라면 제398조의 틀 안에서 판단됩니다.
계약서를 쓸 때와 분쟁이 터진 뒤
계약 단계에서는 네 가지를 적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첫째, 위약금의 성격을 배상액의 예정인지 위약벌인지 명시합니다. 둘째, 초과 손해를 따로 청구할 수 있는지를 정합니다. 셋째, 지연 사건이라면 지체일수에서 제외되는 사유를 열거합니다. 넷째, 계산의 기준일을 정의합니다. 이 네 줄이 있으면 분쟁의 절반은 계약서 안에서 정리됩니다. 이미 분쟁이 생긴 뒤라면 순서가 바뀝니다. 먼저 조항의 성격을 확정하고, 다음으로 요건 사실인 채무불이행의 존부를 정리하며, 마지막으로 감액 사유를 검토합니다. 청구하는 쪽이든 방어하는 쪽이든 실제 손해의 규모를 알고 들어가는 편이 유리합니다. 예정액과 실손해의 간격이 감액 판단의 중심에 놓이기 때문입니다. 계약서의 한 줄은 분쟁이 생기기 전까지는 잠들어 있다가, 생기는 순간 가장 먼저 깨어나 금액을 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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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대한중앙 한병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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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계약서에 위약금이라고만 적혀 있으면 어떻게 되나요?
민법 제398조 제4항에 따라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됩니다. 위약벌로 인정받으려면 그러한 취지가 계약에 분명히 드러나야 합니다.
약정한 위약금이 너무 큰데 줄일 수 있나요?
제398조 제2항은 예정액이 부당히 과다한 경우 법원이 적당히 감액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협상력의 불균형, 위반 정도, 실제 손해와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체상금은 어떻게 계산되나요?
계약금액에 지체상금률과 지체일수를 곱하는 방식이 일반적입니다. 발주자 귀책이나 설계변경으로 인한 기간은 지체일수에서 제외되어야 하므로 공사 일지와 승인 문서가 핵심 자료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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