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와 건물을 각각 별개의 부동산으로 보는 것이 우리 법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남의 땅 위에 내 건물이 서 있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이때 그 땅을 쓸 권리를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따라 건물의 운명이 갈립니다. 임대차로 빌리는 방법도 있지만, 물권인 지상권을 설정하면 훨씬 강한 보호를 받습니다. 민법 제280조부터 제285조까지가 그 내용을 정하고 있습니다. 기간, 갱신, 매수청구로 이어지는 구조를 정리합니다.
최단 존속기간 - 30년·15년·5년
제280조 제1항은 계약으로 지상권의 존속기간을 정하는 경우 다음 연한보다 단축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세 구간을 둡니다. 석조, 석회조, 연와조 또는 이와 유사한 견고한 건물이나 수목의 소유를 목적으로 하는 때에는 30년, 그 밖의 건물의 소유를 목적으로 하는 때에는 15년, 건물 이외의 공작물의 소유를 목적으로 하는 때에는 5년입니다. 제2항은 더 나아갑니다. 이보다 짧은 기간을 정한 때에는 그 기간까지 연장됩니다. 계약서에 10년이라고 적어도 견고한 건물이라면 30년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 규정은 강행규정으로 이해되고 있어 당사자의 합의로 낮출 수 없습니다. 제281조는 기간을 정하지 않은 경우 최단 존속기간이 적용되고, 공작물의 종류와 구조를 정하지 않은 때에는 제280조 제2호의 건물, 즉 15년으로 본다고 정합니다.
임대차와 무엇이 다른가
같은 목적을 임대차로도 달성할 수 있지만 성질이 다릅니다. 지상권은 물권이므로 등기하면 누구에게나 주장할 수 있습니다. 토지가 팔려 소유자가 바뀌어도 새 소유자에게 그대로 대항합니다. 반면 임대차는 채권이어서 원칙적으로 계약 상대방에게만 주장할 수 있고, 등기하거나 특별법의 보호 요건을 갖추어야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제282조는 지상권자가 타인에게 그 권리를 양도하거나 존속기간 내에서 토지를 임대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토지 소유자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는 점에서 임차권과 크게 다릅니다. 임차권은 제629조에 따라 임대인의 동의 없이 양도나 전대를 할 수 없고 위반하면 해지 사유가 됩니다. 장기간 건물을 소유해야 하는 사업이라면 처음부터 지상권을 검토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간이 끝났을 때 - 갱신청구권과 매수청구권
제283조는 두 개의 권리를 순서대로 배치합니다. 제1항은 지상권이 소멸한 경우에 건물 기타 공작물이나 수목이 현존한 때에는 지상권자가 계약의 갱신을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제2항은 지상권설정자가 갱신을 원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지상권자가 상당한 가액으로 그 공작물이나 수목의 매수를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이 구조가 핵심입니다. 갱신을 거절할 자유는 토지 소유자에게 있지만, 거절하면 건물을 사 주어야 합니다. 매수청구권은 형성권으로 이해되어, 행사하면 상대의 승낙 없이도 그 시가에 매매계약이 성립한 것과 같은 효과가 생깁니다. 그래서 토지 소유자로서는 기간 만료가 곧 정리를 뜻하지 않습니다. 제284조는 갱신하는 경우 존속기간이 갱신한 날부터 제280조의 최단 존속기간보다 단축될 수 없다고 정합니다.
수거의무와의 관계
제285조 제1항은 지상권이 소멸한 때에 지상권자가 건물 기타 공작물이나 수목을 수거하여 토지를 원상에 회복하여야 한다고 정합니다. 언뜻 제283조의 매수청구권과 모순되어 보이지만 순서가 있습니다. 지상물이 현존하는 경우 지상권자는 먼저 갱신을 청구하고, 거절되면 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그 어느 것도 하지 않거나 요건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수거의무가 남습니다. 그리고 제285조 제2항은 토지 소유자가 상당한 가액을 제공하여 매수를 청구할 수 있는 경우를 정하고 있어, 양방향의 조정이 이루어지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실무에서 다투어지는 것은 지상물이 현존하는지와 그 상당한 가액이 얼마인지입니다. 후자는 결국 감정의 문제가 되며, 건물의 잔존 가치와 위치를 함께 고려해 산정됩니다.
법정지상권이라는 또 하나의 통로
계약으로 설정하지 않아도 법률의 규정이나 판례에 의해 지상권이 인정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당권이 실행되어 토지와 건물의 소유자가 달라진 경우에 관한 민법 제366조의 법정지상권이 대표적입니다. 또한 토지와 건물이 같은 사람의 소유였다가 매매 등으로 소유자가 달라졌는데 건물을 철거한다는 특약이 없는 경우, 판례는 관습상 법정지상권을 인정해 왔습니다. 경매로 토지만 낙찰받은 사람이 건물 철거를 요구했다가 이 법리로 막히는 사건이 실제로 자주 발생합니다. 그래서 토지만 나온 경매 물건을 검토할 때는 지상 건물의 소유 관계와 그 이력을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등기부에 지상권이 없다고 해서 토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이 분야의 가장 흔한 함정입니다.
계약할 때 정해 두어야 할 것
지상권 설정계약을 준비한다면 네 가지를 문서에 담는 것이 좋습니다. 첫째, 목적을 명확히 적습니다. 견고한 건물인지 그 밖의 건물인지 공작물인지에 따라 최단 존속기간이 달라지므로 이 기재가 곧 기간을 정합니다. 둘째, 지료의 액수와 증감 방법을 정합니다. 지료는 등기해야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으므로 등기사항에 포함시켜야 합니다. 셋째, 기간 만료 시의 처리를 미리 정합니다. 갱신 여부의 통지 시한과 매수 가액의 산정 방법을 정해 두면 분쟁의 폭이 크게 줄어듭니다. 넷째, 반드시 등기합니다. 등기하지 않은 지상권 설정 합의는 당사자 사이의 채권적 약정에 그쳐 토지가 팔리면 무너집니다. 오랜 기간을 전제로 하는 권리인 만큼, 계약 단계에서의 정확성이 그 기간 전체를 좌우합니다.
정리하면 지상권은 오래 쓰는 권리이고, 그래서 계약 단계의 문장 하나가 수십 년의 관계를 정합니다. 목적물의 종류가 최단 기간을 정하고, 지료의 등기 여부가 승계 관계를 정하며, 만료 시 처리 조항이 마지막 분쟁의 크기를 정합니다. 반대로 토지를 소유한 쪽에서는 지상권을 설정하는 순간 그 기간 동안의 이용이 사실상 고정된다는 점을 알고 결정해야 합니다. 임대차와 지상권 가운데 무엇을 택할지는 기간과 승계 가능성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가장 실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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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계약서에 10년으로 적었는데 그대로 유효한가요?
민법 제280조 제2항에 따라 최단 존속기간보다 짧게 정한 때에는 그 기간까지 연장됩니다. 견고한 건물이라면 30년, 그 밖의 건물이라면 15년으로 늘어납니다.
기간이 끝나면 건물을 철거해야 하나요?
지상물이 현존하면 제283조에 따라 갱신을 청구할 수 있고, 토지 소유자가 갱신을 원하지 않으면 상당한 가액으로 매수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토지만 경매로 낙찰받으면 건물을 철거할 수 있나요?
법정지상권이나 관습상 법정지상권이 인정되면 철거를 구할 수 없습니다. 토지만 나온 물건은 지상 건물의 소유 관계와 이력을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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