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땅에 2층짜리 물류 창고를 올리기로 하고 지상권 설정 계약서를 받았습니다. 특약란에는 존속기간 7년, 지료를 한 번이라도 늦게 내면 지상권 소멸, 기간이 끝나면 지상권자 비용으로 건물 철거라는 문장이 나란히 적혀 있습니다. 땅 주인은 서명했으니 그대로 지키라고 합니다. 그런데 민법은 이런 조항 가운데 일부를 처음부터 힘이 없는 것으로 정해 두었습니다. 어느 문장이 살아남는지는 조문 여덟 개에 차례로 대 보면 가려집니다.
어떤 약정이 처음부터 힘을 잃나
민법 제289조는 한 문장입니다. 제280조부터 제287조까지의 규정에 위반되는 계약으로 지상권자에게 불리한 것은 그 효력이 없습니다.
조건이 둘입니다. 그 여덟 조문 가운데 하나와 어긋나야 하고, 그 결과가 지상권자에게 불리해야 합니다. 둘 다 갖춘 약정은 서명이 있어도, 공증을 받았어도 효력이 없습니다.
거꾸로 지상권자에게 유리한 약정은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땅 주인이 스스로 손해를 감수하는 약속까지 법이 막을 이유는 없기 때문입니다.
| 조문 | 정해 둔 내용 | 무효가 되기 쉬운 특약 |
|---|---|---|
| 제280조·제281조 | 건물 종류별 최단 존속기간, 기간을 안 정하면 최단기간 | 견고한 건물인데 7년만 쓰기로 함 |
| 제282조 | 지상권 양도와 기간 내 토지 임대 | 어떤 경우에도 넘기지 못한다는 조항 |
| 제283조·제284조 | 건물이 남아 있으면 갱신청구, 거절되면 매수청구 | 만료 시 매수청구를 포기한다는 조항 |
| 제285조 | 소멸 시 수거·원상회복, 설정자의 매수청구 | 설정자가 대가 없이 건물을 가져간다는 조항 |
| 제286조 | 사정 변경에 따른 지료 증감청구 | 지료는 어떤 경우에도 내리지 않는다는 조항 |
| 제287조 | 2년 이상 지료 미지급 시 소멸청구 | 한 번만 밀려도 소멸한다는 조항 |
7년으로 적은 기간은 몇 년이 되나
짧게 적은 숫자는 법이 정한 최단기간까지 늘어납니다.
제280조 제1항은 석조, 석회조, 연와조나 이와 비슷한 견고한 건물이나 수목은 30년, 그 밖의 건물은 15년, 건물 아닌 공작물은 5년보다 짧게 정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제2항은 더 짧게 정한 때 그 기간까지 연장한다고 적었습니다. 따로 무효를 다툴 필요 없이 숫자가 바뀌는 구조입니다.
창고가 어느 칸에 들어가는지는 구조로 정해집니다. 견고한 건물로 볼 수 있으면 30년, 그렇지 않으면 15년입니다. 설계도서와 건축물대장의 구조 표시를 먼저 확인하십시오.
기간을 아예 비워 둔 계약은 제281조가 최단기간을 넣어 줍니다. 공작물의 종류와 구조조차 정하지 않았다면 15년 쪽 건물을 짓는 것으로 봅니다.
지료를 한 번 늦게 내면 끝이라는 조항은
통하지 않습니다.
제287조가 소멸청구의 문턱으로 삼은 것은 2년 이상의 지료 미지급입니다. 한 달, 한 번의 연체로 지상권이 사라진다는 특약은 이 기준보다 지상권자를 불리하게 만드므로 제289조에 걸립니다.
그렇다고 지료를 미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밀린 지료는 그대로 빚이고, 2년 치가 쌓이면 소멸청구가 가능해집니다. 지상권이 은행 담보로 잡혀 있다면 제288조가 한 단계를 더 끼워 넣습니다. 은행에 먼저 알리고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에야 지상권이 사라집니다.
지료를 절대 깎아 주지 않는다는 조항도 비슷하게 봅니다. 제286조는 조세나 땅값의 변동으로 지료가 상당하지 않게 되면 양쪽 모두 증감을 청구할 수 있게 했습니다. 지상권자의 감액청구만 막는 문구는 한쪽으로 기운 약정입니다.
기간이 끝나면 무조건 헐라는 조항은
기간이 끝났을 때 건물이 서 있다면 지상권자에게 두 단계의 길이 있습니다.
먼저 제283조 제1항의 갱신청구입니다. 갱신을 거절당했을 때 꺼낼 다음 카드는 같은 조 제2항의 매수청구로, 건물값을 적정하게 쳐서 사 가라고 요구하는 권리입니다. 갱신에 합의하면 제284조가 다시 최단기간을 보장하고, 그보다 긴 기간은 얼마든지 정할 수 있습니다.
무조건 철거하고 매수청구도 하지 않는다는 특약은 이 두 권리를 미리 빼앗는 약정입니다. 지상권자에게 불리하므로 효력을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제285조는 방향이 반대입니다. 지상권이 소멸하면 지상권자는 건물을 거두어 땅을 원래대로 돌려놓아야 합니다. 거꾸로 땅 주인 쪽에서 적정한 값을 치르고 건물을 넘기라고 요구하면, 지상권자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응해야 합니다. 대가 없이 건물을 넘긴다는 조항은 여기서도 걸립니다.
무효가 된 자리는 무엇으로 채우나
불리한 문장 하나가 빠질 뿐, 계약서 전체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빈자리는 조문의 내용이 메웁니다. 기간은 제280조 제2항이 명시적으로 늘려 주고, 소멸 기준은 2년 연체로, 만료 시에는 갱신청구와 매수청구가 다시 살아납니다. 지료 액수, 사용 목적처럼 강행규정과 무관한 조항은 적힌 대로 지켜야 합니다.
유리한 약정은 손대지 않습니다. 연체 기준을 3년으로 넉넉히 잡았거나 기간을 40년으로 정했다면 그대로 효력이 있습니다.
주의
특약이 무효라는 사실은 땅 주인이 알아서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철거 요구나 소멸 통지를 받고 아무 대응 없이 건물을 비우면 다툴 기회를 스스로 놓칩니다. 통지를 받은 날짜와 내용을 보관하고, 서면으로 반대 의사를 남겨 두십시오.
등기부에는 무엇이 남나
부동산등기법 제69조는 지상권 등기에 설정의 목적과 범위를 반드시 적게 합니다. 존속기간, 지료와 지급시기, 구분지상권의 토지 사용 제한 약정은 등기원인에 약정이 있을 때만 기록하고, 땅 일부에 설정하면 도면 번호가 붙습니다.
등기부에 7년이라고 적혀 있어도 효력은 민법이 정한 최단기간을 따릅니다. 숫자 하나가 권리를 줄이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등기 문구는 중요합니다. 땅이 팔리면 새 주인은 등기부를 보고 지상권의 내용을 파악합니다. 지료와 지급시기를 약정했다면 신청서에 빠뜨리지 말고 함께 올려 두십시오.
서명 전후로 할 일
- 계약서 특약을 제280조부터 제287조까지와 한 줄씩 대조해 불리한 문장을 표시합니다.
- 서명 전이라면 그 문장을 지우거나 조문과 같은 내용으로 고쳐 달라고 요구합니다.
- 이미 서명했다면 건물 구조를 확인해 실제 최단기간이 30년인지 15년인지 계산합니다.
- 지료는 계좌이체로 내고 날짜별 납부 내역을 남겨 연체 다툼에 대비합니다.
- 철거나 소멸 통지를 받으면 바로 서면으로 이의를 밝힙니다.
정리
제289조는 지상권자에게 불리한 특약만 골라 효력을 없앱니다. 짧은 기간은 최단기간까지 늘어나고, 한 번의 연체로 소멸한다는 조항이나 매수청구를 포기시키는 조항은 힘을 잃습니다.
반대로 유리한 약정과 강행규정과 무관한 조항은 그대로 남습니다. 무효인 조항을 근거로 압박을 받고 있다면 계약서와 등기사항증명서, 지료 납부 내역을 정리해 변호사와 함께 대응 순서를 잡아 보시기 바랍니다.
참조 조문
민법 제280조, 제281조, 제282조, 제283조, 제284조, 제285조, 제286조, 제287조, 제288조, 제289조 · 부동산등기법 제69조
이 유형의 사건은 초기 대응 시점이 결과를 좌우합니다. 시간이 지난 뒤 후회하시기보다, 의문이 생기는 그 시점에 변호사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법무법인 대한중앙 한병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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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계약서에 서명했는데 정말 무효를 주장할 수 있나요?
제289조는 서명 여부를 묻지 않고 지상권자에게 불리한 약정의 효력을 부정합니다. 다만 그 조항이 실제로 제280조부터 제287조까지와 어긋나는지, 결과가 불리한지는 조항별로 따져야 합니다.
지료를 1년 넘게 못 냈습니다. 지금 소멸청구가 가능한가요?
조문이 정한 기준은 2년 이상의 지료 미지급입니다. 그 전이라도 밀린 지료는 갚아야 할 채무이므로 지금 정리해 두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기간 만료 때 건물을 사 달라고 하면 땅 주인이 거절할 수 있나요?
먼저 갱신을 청구하고, 땅 주인이 갱신을 원하지 않을 때 상당한 가액으로 매수를 청구하는 순서입니다. 건물이 현존해야 하므로 만료 전에 철거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등기부의 존속기간과 민법의 최단기간이 다르면 어느 쪽이 맞나요?
효력은 민법이 정한 최단기간을 따릅니다. 다만 거래 상대방이 등기부만 보고 오해할 수 있으므로 필요하면 변경 등기를 함께 검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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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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