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를 살다 보면 보일러를 바꾸고 창호를 손보고 바닥을 새로 깔게 됩니다. 나갈 때가 되면 그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지가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그런데 같은 집을 같은 돈으로 고쳤어도 전세권 등기를 한 분과 임대차 계약만 한 분의 결론이 다릅니다. 민법이 두 관계에 서로 다른 규칙을 붙여 두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지출이 돌아오고 어느 지출이 돌아오지 않는지 나누어 보겠습니다.
고친 돈은 왜 두 종류로 나뉘나
돈을 들인 목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물건이 원래 상태를 유지하도록 들이는 돈이 있고, 없던 가치를 더하려고 들이는 돈이 있습니다. 앞쪽을 필요비, 뒤쪽을 유익비라고 부릅니다. 터진 배관을 고치는 일이 앞쪽이고, 낡은 창을 이중창으로 바꾸어 단열을 높이는 일이 뒤쪽에 가깝습니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돌려받는 길이 아예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인지에 따라 청구 근거도, 조건도, 금액을 정하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영수증만 모아 두고 구분을 해 두지 않으면 나중에 정리가 어렵습니다.
전세권자에게 필요비 청구권이 없는 이유
조문이 그 부담을 전세권자 쪽에 얹어 두었습니다.
민법 제309조는 전세권자가 목적물의 현상을 유지하고 그 통상의 관리에 속한 수선을 하여야 한다고 정합니다. 해도 된다가 아니라 하여야 한다입니다. 유지와 통상 수선이 의무로 규정된 이상, 그 비용을 소유자에게 돌리는 조문이 따로 놓일 자리가 없습니다.
전세권은 목적물을 오랫동안 전면적으로 쓰는 물권입니다. 소유자는 전세금을 받아 두고 물러나 있고, 일상적인 관리는 실제로 쓰는 사람이 맡는 구조가 자연스럽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보일러 수리비 영수증을 들고 가도 제309조가 답이 됩니다.
통상의 관리에 속한 수선
그 물건을 쓰는 동안 통상적으로 생기는 마모와 고장을 손보는 일을 말합니다. 소모품 교체, 간단한 누수 보수, 도배와 장판의 손질이 여기에 들어갑니다. 반대로 건물의 골격이나 주요 설비가 통째로 못 쓰게 된 경우는 통상의 범위를 넘어선다고 보아 달리 다루어집니다.
어디까지가 통상의 범위인가
여기가 실제 다툼의 자리입니다. 조문은 통상이라는 한 단어만 두고 기준을 적지 않았습니다.
판단에 쓰이는 재료는 몇 가지로 정리됩니다. 고장의 원인이 사용에 따른 마모인지 건물 자체의 결함인지를 먼저 봅니다. 고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정도였는지, 들어간 비용이 전세금에 비해 어느 수준인지도 함께 따집니다.
지붕 전체를 다시 덮거나 노후 배관을 건물 단위로 교체하는 일은 통상의 관리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런 지출은 성격을 다시 따져 소유자에게 돌릴 여지가 생깁니다.
공사 전에 소유자에게 알리고 회신을 받아 두는 절차가 여기서 결정적입니다. 사전 협의 기록이 있으면 성격 다툼이 짧아집니다.
유익비는 어떤 조건으로 받나
제310조 제1항이 세 가지를 한 문장에 담았습니다. 목적물을 개량하기 위하여 지출한 금액 기타 유익비에 관하여, 그 가액의 증가가 현존한 경우에 한하여, 소유자의 선택에 좇아 그 지출액이나 증가액의 상환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조건은 개량입니다. 유지가 아니라 값을 올리는 지출이어야 합니다. 둘째 조건은 그 증가가 지금도 남아 있어야 한다는 현존입니다. 셋째는 금액을 누가 고르는가의 문제입니다. 순서대로 걸러집니다.
세 조건을 모두 통과해야 돈이 움직입니다. 하나라도 빠지면 청구가 서지 않습니다.
| 지출 | 전세권자 | 임차인 |
|---|---|---|
| 필요비 | 제309조에 따라 스스로 부담 | 제626조 제1항으로 청구 가능 |
| 유익비 | 제310조로 청구 가능 | 제626조 제2항으로 청구 가능 |
| 선택권 | 소유자에게 있음 | 임대인에게 있음 |
| 상환기간 유예 | 법원이 허여할 수 있음 | 법원이 허여할 수 있음 |
현존한다는 말의 무게
지출한 사실이 아니라 남아 있는 결과를 봅니다.
5년 전에 800만원을 들여 시스템 에어컨을 달았더라도 지금 그 설비가 고장 나 있거나 유행이 지나 값을 더하지 못한다면 증가분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반대로 단열 공사처럼 시간이 지나도 효용이 유지되는 항목은 현존을 인정받기 쉽습니다.
그래서 나가기 직전의 상태가 결정적입니다. 오래전 영수증만으로는 부족하고, 지금 그 개량이 건물 값을 얼마나 올려 두고 있는지를 보여야 합니다.
감정이 필요해지는 국면입니다.
왜 소유자가 금액을 고르나
두 숫자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들인 돈과 올라간 값이 일치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1,000만원을 들였는데 건물 가치는 600만원만 올랐다면 소유자는 600만원 쪽을 고를 것입니다. 반대로 300만원을 들여 700만원의 가치를 더했다면 소유자는 300만원 쪽을 고릅니다. 선택권이 소유자에게 있다는 한 줄이 이런 결과를 만듭니다.
고친 사람 입장에서는 불리해 보이지만 취지는 다른 데 있습니다. 소유자가 원하지도 않은 공사를 근거로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것을 막자는 것입니다.
공사를 하기 전에 소유자와 금액을 합의해 두면 이 조문의 적용을 피할 수 있습니다. 약정이 있으면 약정이 먼저입니다.
언제 청구하고 무엇을 준비하나
전세권이 소멸한 시점을 기준으로 정산이 시작됩니다.
- 공사 전후의 사진을 같은 각도로 찍어 둡니다.
- 견적서와 세금계산서, 이체 내역을 항목별로 묶습니다.
- 공사를 알리고 동의를 구한 문자와 메일을 출력해 둡니다.
- 어느 항목이 유지이고 어느 항목이 개량인지 표로 나눕니다.
- 개량 항목의 현재 상태와 작동 여부를 확인해 기록합니다.
- 전세금 반환과 등기 말소를 함께 협의하며 정산안을 제시합니다.
제317조는 전세권이 소멸한 때에 소유자가 목적물의 인도와 말소등기 서류의 교부를 받는 동시에 전세금을 반환하도록 정합니다. 유익비 정산은 이 교환의 자리에서 함께 논의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제310조 제2항은 소유자의 청구가 있으면 법원이 상당한 상환기간을 허여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인정을 받아도 즉시 현금으로 들어온다는 보장은 없다는 뜻입니다.
확인할 것
· 계약서에 원상회복이나 비용 부담에 관한 특약이 있는지
· 공사를 알린 문서와 소유자의 회신이 남아 있는지
· 지출 항목을 유지와 개량으로 나눈 내역
· 개량 부분이 지금도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
· 전세금 반환 시기와 정산 방식에 관한 합의 여부
정리
민법 제309조는 전세권자에게 현상 유지와 통상 수선의 의무를 지웠습니다. 그래서 일상적인 수리비는 스스로 부담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임차인이라면 제626조 제1항으로 필요비를 청구할 수 있어 출발점이 다릅니다.
개량에 들인 돈은 제310조 제1항으로 돌려받을 수 있지만 조건이 셋입니다. 값을 올린 지출일 것, 그 증가가 지금도 남아 있을 것, 그리고 지출액과 증가액 중 어느 쪽을 줄지는 소유자가 고른다는 것입니다. 큰 공사를 앞두고 계시다면 시작 전에 부담 주체를 서면으로 정하시고, 이미 지출한 금액을 두고 다투고 계시다면 항목 구분부터 변호사와 함께 잡으시기 바랍니다.
참조 조문
민법 제309조, 제310조, 제317조, 제626조
이 유형의 사건은 초기 대응 시점이 결과를 좌우합니다. 시간이 지난 뒤 후회하시기보다, 의문이 생기는 그 시점에 변호사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법무법인 대한중앙 한병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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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보일러를 교체한 비용을 집주인에게 청구할 수 있습니까?
전세권 등기를 하신 경우라면 제309조가 현상 유지와 통상 수선을 의무로 정하고 있어 원칙적으로 스스로 부담합니다. 다만 노후로 설비 전체를 바꾼 경우처럼 통상의 범위를 넘는다고 볼 사정이 있다면 성격을 다시 따질 여지가 있습니다.
공사비 전액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제310조 제1항은 소유자의 선택에 따라 지출액이나 증가액 중 하나를 상환하도록 합니다. 두 금액이 다르면 소유자가 낮은 쪽을 고르는 것이 보통이므로 공사 전에 금액을 약정해 두시는 편이 유리합니다.
10년 전에 한 공사도 청구할 수 있습니까?
조문은 가액의 증가가 현존할 것을 요건으로 합니다. 시간이 지나 그 개량의 효용이 남아 있지 않다면 청구가 서지 않으므로, 현재 상태를 보여 줄 자료와 감정의 필요성을 먼저 검토하십시오.
인정을 받으면 바로 돈을 받게 됩니까?
제310조 제2항은 소유자의 청구가 있으면 법원이 상당한 상환기간을 허여할 수 있게 했습니다. 지급 시기가 미루어질 수 있으므로 전세금 반환 일정과 묶어 협의하는 방안을 함께 검토하시는 편이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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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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