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기부 을구에 잡혀 있는 저당권을 두고 이런 제안을 받는 일이 있습니다. 순위가 좋으니 그 자리만 사겠다는 말입니다. 반대로 빚을 다 갚았는데 등기는 그대로 남아 매매가 막히는 경우도 흔합니다. 두 장면 모두 저당권이 혼자서는 움직이지 못하는 권리라는 데서 나옵니다. 민법은 담보를 채권에 묶어 두었습니다. 떼어 낼 수 없고, 채권이 사라지면 함께 사라집니다. 그 두 조문이 실제 거래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짚어 보겠습니다.
저당권 자리만 떼어 살 수 있나
없습니다.
민법 제361조는 저당권을 그 담보한 채권과 분리하여 타인에게 양도하지 못한다고 정합니다. 문장의 핵심어가 분리입니다. 빌려준 돈은 그대로 두고 담보만 넘기는 거래는 조문이 정면으로 막아 두었습니다.
이유는 담보의 성격에 있습니다. 제356조는 저당권자가 채무자나 제삼자가 점유를 옮기지 않고 담보로 내놓은 부동산에서 자기 채권의 우선변제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적었습니다. 받을 돈이 있어야 우선변제라는 말이 성립합니다. 받을 돈 없이 순위만 남은 권리는 법이 상정하지 않습니다.
순위가 탐나서 그 자리만 사겠다는 제안을 받으셨다면, 실제로는 채권 자체를 사는 계약으로 짜야 합니다.
주된 권리와 붙어 다니는 권리
저당권은 그 자체로 값을 가지는 권리가 아니라 다른 채권의 회수를 돕기 위해 붙어 있는 권리입니다. 이 성질 때문에 채권이 생겨야 담보가 서고, 채권이 옮겨 가면 담보도 따라가며, 채권이 사라지면 담보도 없어집니다.
다른 빚의 담보로 돌려 쓰는 것은 어떤가
이것도 막혀 있습니다.
제361조의 뒷부분은 다른 채권의 담보로 하지 못한다고 이어집니다. 앞서 본 양도 금지와 나란히 놓인 두 번째 금지입니다. 이미 잡아 둔 저당권을 담보 삼아 다시 돈을 빌리는 구조를 조문이 차단합니다.
현장에서는 이런 형태로 제안이 옵니다. 공사대금 채권의 담보로 잡아 둔 저당권을 자재 대금의 담보로 잠시 돌려 쓰자는 말입니다. 문서를 어떻게 꾸미더라도 조문이 금지한 모습에 닿으면 효력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돌려 쓰고 싶다면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원래의 채권에 질권을 설정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빌려준 돈을 넘기면 담보는 어디로 가나
따라갑니다.
제361조가 금지한 것은 갈라놓는 일이지 함께 옮기는 일이 아닙니다. 채권을 양도하면 그에 붙어 있던 저당권도 새 채권자에게 넘어갑니다. 채권과 담보가 한 몸으로 움직이는 이 성질을 수반성이라고 부릅니다.
다만 등기부에는 저절로 반영되지 않습니다. 저당권이전등기를 따로 신청해야 을구의 명의가 바뀝니다. 이 등기는 원래의 저당권에 붙는 부기 형식으로 기록되어 처음의 순위를 그대로 유지합니다.
채권을 사들이는 쪽에서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채권양도의 통지나 승낙이 갖추어졌는지, 양도 금지 특약이 붙어 있지 않은지입니다. 등기만 옮겨 놓고 채권 쪽 절차가 비어 있으면 나중에 다투게 됩니다.
빚을 다 갚으면 저당권은 저절로 사라지나
권리는 사라지고 등기는 남습니다.
제369조는 저당권으로 담보한 채권이 시효의 완성 기타 사유로 인하여 소멸한 때에는 저당권도 소멸한다고 정합니다. 이 성질이 부종성입니다. 원금과 이자를 모두 변제한 순간 담보물권 자체는 효력을 잃습니다.
문제는 등기부입니다. 권리가 없어졌다고 해서 을구의 기록이 스스로 지워지지는 않습니다. 말소등기를 신청해야 비로소 빈칸이 됩니다.
이 간격 때문에 매매가 막힙니다. 잔금을 치르는 자리에서 매수인 쪽 법무사가 남아 있는 근저당을 짚어 내면 그날 등기를 넘기지 못하는 일이 생깁니다. 상환이 끝난 다음에는 은행에서 해지증서와 위임장, 등기필정보를 받아 곧바로 말소를 진행하시는 편이 낫습니다.
| 하려는 일 | 가능 여부 | 근거 |
|---|---|---|
| 채권은 두고 저당권만 양도 | 불가 | 제361조 전단 |
| 저당권을 다른 채권의 담보로 제공 | 불가 | 제361조 후단 |
| 채권과 저당권을 함께 양도 | 가능 | 제361조의 반대 해석 |
| 변제 후 저당권 유지 | 불가 | 제369조 |
| 굳기 전 근저당에서 개별 채무가 사라짐 | 영향 없음 | 제357조 제1항 |
근저당도 같은 규칙으로 보나
확정되기 전까지는 다릅니다.
제357조 제1항은 갚아야 할 한도만 미리 적어 두고 실제 액수는 나중으로 미뤄 둔 채 담보를 잡을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러면서 굳어지기 전까지는 채무의 소멸 또는 이전이 저당권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고 덧붙입니다.
거래가 계속되는 관계를 담기 위한 장치입니다. 자재를 대고 대금을 받고 다시 대는 거래에서 잔액이 한 번 영이 되었다고 근저당이 없어져 버리면 다음 거래마다 등기를 새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확정 전에는 개별 채무가 사라져도 담보는 그대로 서 있습니다.
확정되고 나면 보통의 저당권과 같아집니다. 그 시점의 채무가 피담보채권으로 굳고, 그 채무를 다 갚으면 제369조에 따라 담보도 소멸합니다.
내가 빚을 진 사람이 아니어도 지울 수 있나
길이 있습니다.
제364조가 길을 하나 열어 둡니다. 담보가 걸린 부동산의 소유권이나 지상권, 전세권을 뒤에 얻은 사람은 그 부동산이 짊어진 빚을 저당권자에게 갚고 담보를 지워 달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집을 사들인 쪽이 직접 갚고 등기를 비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순서는 이렇게 잡습니다.
- 등기사항증명서로 저당권자와 채권최고액, 접수일과 순위를 확인합니다.
- 저당권자에게 남은 채무의 원금과 이자를 정산한 금액을 서면으로 받습니다.
- 그 금액을 변제하고 영수증과 해지증서, 말소에 필요한 위임장을 받습니다.
- 관할 등기소에 저당권말소등기를 신청하고 완료된 등기사항증명서로 확인합니다.
- 매도인에게 그만큼을 매매대금에서 공제하기로 한 내용을 계약서에 남깁니다.
저당권자가 정산에 응하지 않거나 행방이 확인되지 않으면 공탁과 소송으로 방향을 바꾸게 됩니다.
확인할 것
· 을구에 남은 담보가 근저당인지 보통의 저당권인지
· 채권최고액과 실제 남은 채무의 차이
· 거래 관계가 끝나 확정되었는지
· 말소에 필요한 서류를 누가 언제까지 내주기로 했는지
· 잔금일과 말소 신청일이 같은 날로 맞추어져 있는지
정리
저당권은 채권에 붙어 있는 권리라 혼자 다니지 못합니다. 제361조가 떼어 내는 두 가지 방식을 모두 막았고, 제369조는 채권이 사라지면 담보도 사라진다고 정했습니다.
실무의 마찰은 대부분 등기부에서 생깁니다. 권리가 없어진 뒤에도 기록은 남기 때문입니다. 갚은 날과 말소한 날 사이가 벌어지면 매매와 대출이 그 자리에서 멈춥니다.
담보가 붙은 부동산을 사거나 채권을 넘겨받으려 하신다면, 등기부와 대출 잔액 확인서를 함께 놓고 어느 조문이 걸리는지를 변호사와 함께 가려 보시기 바랍니다.
참조 조문
민법 제356조, 제357조, 제361조, 제364조, 제369조
이 유형의 사건은 초기 대응 시점이 결과를 좌우합니다. 시간이 지난 뒤 후회하시기보다, 의문이 생기는 그 시점에 변호사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법무법인 대한중앙 한병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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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은행 대출을 다 갚았는데 근저당이 그대로 있습니다.
채무가 확정되어 소멸했다면 담보물권도 함께 소멸하지만 등기는 신청해야 지워집니다. 은행에서 해지증서와 위임장을 받아 관할 등기소에 말소등기를 신청하시고, 완료 후 등기사항증명서로 비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순위 좋은 저당권만 사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채권과 분리해 담보만 넘기는 거래는 조문이 금지하고 있어 효력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 저당권이 담보하는 채권 자체를 양수하는 계약으로 구성할 수 있는지부터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공사대금 채권을 다른 회사에 넘겼습니다.
채권이 옮겨 가면 그에 붙은 저당권도 따라갑니다. 다만 등기부의 명의는 저당권이전등기를 해야 바뀌므로, 채권양도 통지 절차와 등기 신청을 함께 챙기셔야 합니다.
제가 산 집에 전 주인의 대출이 남아 있습니다.
소유권을 취득한 제삼자로서 직접 변제하고 담보의 소멸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정산 금액을 서면으로 확인한 뒤 매매대금에서 공제하는 방식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으니 계약서에 그 내용을 적어 두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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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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