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던 세입자에게 어느 날 집주인이 외벽 공사를 하겠다고 통보합니다. 비계가 서고 창을 막고 두 달 동안 소음이 이어진다고 합니다. 장사를 하는 가게라면 더 곤란합니다. 집주인이 자기 건물을 손보겠다는데 세 든 사람이 그만두라고 할 수 있는지, 그동안의 손해는 누가 떠안는지가 곧바로 문제됩니다. 민법은 이 장면을 위해 네 개의 조문을 나란히 두었고, 각각 다른 답을 내놓습니다.
수선은 원래 누구의 일인가
빌려준 쪽의 일입니다.
제623조가 빌려준 사람에게 두 가지를 지웁니다. 하나는 목적물을 넘겨주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계약이 이어지는 동안 그 집을 쓰고 거둘 수 있는 상태로 지켜 두는 일입니다. 열쇠를 건네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고칠 책임은 원칙적으로 건물 임자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보일러가 고장 나거나 지붕에서 물이 새면 고칠 사람은 빌려준 쪽입니다. 전구를 갈거나 배수구를 뚫는 정도의 사소한 손질은 쓰는 사람이 감당하는 것으로 봅니다. 경계는 그 집을 쓰는 데 지장이 있느냐로 갈립니다.
이 의무가 있기 때문에 뒤의 조문들이 이어집니다. 고칠 의무가 있는 사람은 고칠 수 있어야 합니다.
공사하겠다는데 거절할 수 있나
원칙은 거절하지 못합니다.
제624조는 임대인이 임대물의 보존에 필요한 행위를 하는 때에는 임차인이 이를 거절하지 못한다고 적었습니다. 한 문장뿐이지만 실무에서 자주 쓰이는 조문입니다.
여기서 열쇠가 되는 말은 보존에 필요한입니다. 누수를 잡고 균열을 메우고 노후한 배관을 바꾸는 일은 건물을 지키는 작업입니다. 반면 임대료를 올리려고 내부를 새로 꾸미거나 층을 올리는 공사는 보존이 아닙니다. 그런 작업까지 참으라고 요구할 근거는 이 조문에 없습니다.
거절하지 못한다는 말이 아무 때나 들어와도 된다는 뜻도 아닙니다. 사전에 알리고 시기와 방법을 조율할 의무는 남습니다. 예고 없이 열쇠를 따고 들어오는 행위는 별개의 문제가 됩니다.
보존행위와 개량행위
보존행위는 건물이 낡거나 망가지는 것을 막는 작업이고, 개량행위는 값이나 쓸모를 높이는 작업입니다. 같은 창호 교체라도 깨진 유리를 갈아 끼우는 것과 전체를 이중창으로 바꾸는 것은 성격이 다릅니다. 견적서와 공사 내역서에 적힌 항목이 판단의 출발점이 됩니다.
그래도 견딜 수 없다면
제625조가 출구를 하나 열어 두었습니다.
세 든 사람의 뜻에 반해 보존행위가 이루어졌고 그 탓에 빌린 목적을 이룰 수 없게 되었다면, 계약을 끊을 수 있게 한 조문입니다. 앞 조문이 참으라고 해 놓고, 참을 수 없는 지경이면 나가도 된다고 뒤를 받쳐 준 셈입니다.
문턱은 낮지 않습니다. 불편하다는 정도로는 부족하고 빌린 뜻 자체가 무너질 만큼이어야 합니다. 미용실을 열려고 빌린 가게에 석 달 동안 비계가 서서 손님이 들어올 수 없다면 빌린 뜻 자체가 사라진 것에 가깝습니다. 반대로 주거용 건물에서 복도 도장 작업이 사흘 이어지는 정도는 여기에 미치지 못합니다.
해지는 통보로 이루어집니다. 다만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통보하고 나가 버리면 남은 기간의 차임을 물게 될 수 있어, 공사의 범위와 기간을 먼저 자료로 확보해 두셔야 합니다.
반대로 내가 고쳤다면 어떻게 되나
제626조가 돈을 돌려받는 길을 나눕니다.
제1항이 다루는 것은 필요비입니다. 세 든 사람이 그 집을 지키기 위해 돈을 썼다면 건물 임자에게 곧바로 돌려 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계약이 끝나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쓴 날 바로 청구가 서는 돈입니다.
제2항은 다릅니다. 유익비는 계약이 끝나는 시점에, 늘어난 값이 그때까지 남아 있는 경우에만 돌려받습니다. 금액도 실제로 쓴 돈과 올라간 값 가운데 하나를 건물 임자가 고르게 되어 있습니다. 법원은 그 임자의 청구가 있으면 갚을 기한을 넉넉히 정해 줄 수 있습니다.
차이가 큽니다. 같은 돈을 들여도 어느 칸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받는 시점과 금액이 달라집니다.
| 구분 | 필요비 | 유익비 |
|---|---|---|
| 성격 | 쓸 수 있는 상태를 지키는 지출 | 값이나 쓸모를 높이는 지출 |
| 청구 시점 | 지출한 즉시 | 임대차가 끝난 때 |
| 금액 | 지출한 금액 | 지출액과 증가액 중 임대인이 선택 |
| 조건 | 보존에 필요했을 것 | 늘어난 값이 끝날 때까지 남아 있을 것 |
| 예시 | 누수 보수, 보일러 교체, 배관 수리 | 바닥 마감 개선, 단열 보강 |
공사 때문에 못 쓴 기간의 차임은
제627조가 감액의 근거가 됩니다.
빌린 물건의 한 부분을 세 든 사람의 잘못 없이 쓰지 못하게 되었다면, 그 비율만큼 월세를 깎아 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같은 조 제2항은 남은 부분만으로 빌린 뜻을 채울 수 없는 경우에 계약을 끊는 길까지 열어 둡니다.
공사로 가게의 절반을 못 쓴 기간이 있었다면 그만큼이 대상이 됩니다. 저절로 깎이지는 않습니다. 요구해야 비로소 효력이 생기므로 언제 어떤 내용으로 알렸는지가 남아 있어야 합니다.
문자나 내용증명으로 보내 두십시오. 말로만 한 요구는 나중에 증명되지 않습니다.
공사 통보를 받으면 무엇을 남기나
순서대로 정리해 두면 다툼이 줄어듭니다.
- 공사의 범위와 기간, 시공사를 적은 서면을 달라고 요청합니다.
- 공사 전 현재 상태를 사진과 영상으로 남깁니다.
- 영업장이라면 공사 직전 석 달의 매출 자료를 따로 보관합니다.
- 소음과 분진, 출입 제한이 실제로 어떻게 나타났는지 날짜별로 기록합니다.
- 차임 감액이나 해지를 요구할 때는 문자와 내용증명으로 보냅니다.
반대로 건물을 가진 쪽이라면 통보 시점과 방법을 남겨 두는 편이 낫습니다. 보존에 필요한 작업이었다는 점은 견적서와 진단 자료로 뒷받침됩니다.
주의
계약서 특약란에 원상회복 범위를 넓게 적어 두거나 들인 돈을 돌려받지 않겠다는 문구를 끼워 넣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626조에 관한 약정은 당사자가 달리 정할 수 있는 영역이어서, 그런 문구가 있으면 나중에 돈을 돌려받기 어려워집니다. 서명하기 전에 특약란을 다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정리
건물을 지키기 위한 작업이라면 세 든 사람이 막지 못합니다. 제624조가 그렇게 정했습니다. 대신 그 작업 때문에 빌린 목적을 이룰 수 없게 되면 제625조가 해지를 열어 줍니다.
돈 문제는 제626조와 제627조로 갈립니다. 쓴 돈이 필요비인지 유익비인지에 따라 받는 시점이 달라지고, 못 쓴 부분의 차임은 청구해야 깎입니다.
어느 쪽에 서 있든 기록이 결론을 만듭니다. 통보 문서와 사진, 견적서를 모아 두었다가 변호사와 함께 어느 조문의 문제인지부터 가려 보시는 편이 낫습니다.
참조 조문
민법 제623조, 제624조, 제625조, 제626조, 제627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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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집주인이 예고 없이 열쇠로 들어와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보존에 필요한 작업이라도 들어오는 시기와 방법은 미리 알리는 것이 원칙입니다. 출입 경위를 기록해 두시고 남은 공사 일정은 서면으로 협의하자고 요구하시기 바랍니다.
공사로 두 달 장사를 못 했는데 월세를 다 내야 하나요?
못 쓴 부분의 몫만큼 깎아 달라고 요구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요구해야 효력이 생기므로 기간과 범위를 적어 내용증명으로 보내 두시고 매출 자료를 함께 정리해 두십시오.
보일러를 제 돈으로 바꿨는데 언제 돌려받나요?
보존에 필요한 지출이라면 계약이 끝나기를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청구할 수 있습니다. 교체가 필요했다는 점을 보여 줄 고장 진단서와 영수증을 갖춰 두시기 바랍니다.
인테리어에 들인 돈도 받을 수 있을까요?
값을 높이는 지출은 계약이 끝날 때 늘어난 값이 남아 있어야 청구할 수 있고 금액도 임대인이 고릅니다. 계약서에 원상회복 특약이 있으면 어려워지므로 조항부터 확인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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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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