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기까지 마친 전세권을 가진 분이 사정이 생겨 그 집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자기는 나가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법은 이것을 막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넘겨준 뒤에 벼락이나 홍수처럼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일로 집이 상하면,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전세권자가 그 손해를 떠안게 됩니다. 민법이 딱 한 줄로 이런 책임을 얹어 두었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조문이 생겼는지부터 풀어 보겠습니다.
다시 세를 놓는 것 자체는 허용되나
허용됩니다.
민법 제306조 본문은 전세권자가 전세권을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담보로 제공할 수 있고, 그 존속기간 내에서 목적물을 타인에게 전전세 또는 임대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집주인의 동의를 따로 받으라는 요구가 본문에 없습니다.
임대차와 결정적으로 갈리는 지점입니다. 빌려 쓰는 권리인 임차권은 원칙적으로 임대인의 동의를 얻어야 넘기거나 다시 빌려줄 수 있는데, 물권인 전세권은 그 자체로 처분할 수 있는 재산이기 때문입니다. 등기부에 올라가 있는 권리라는 점이 이런 차이를 만듭니다.
집주인이 미리 막아 둘 수 있나
있습니다. 제306조 단서가 설정행위로 이를 금지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적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금지의 방식입니다. 설정행위로 정하는 것이므로 계약서 한 줄로 끝나지 않고 등기부에 공시되어야 뒤에 들어오는 사람에게까지 힘이 미칩니다. 전세권 설정등기를 할 때 양도와 전전세를 금지한다는 약정을 함께 등기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전세권을 넘겨받으려는 분이라면 등기사항증명서의 을구를 끝까지 읽어 보셔야 합니다. 금지 특약이 등기되어 있다면 그 권리는 처분이 막혀 있는 권리입니다. 계약서에만 적혀 있고 등기가 되지 않은 금지 약정은 당사자 사이에서만 힘을 가집니다. 이 차이가 뒤에 들어오는 사람의 지위를 가릅니다.
전전세
전세권자가 자기 전세권을 그대로 둔 채 그 목적물 위에 새로운 전세권을 설정해 주는 것입니다. 원래의 전세권이 사라지지 않고 그 위에 또 하나가 얹히는 구조여서, 기간과 금액이 원래 권리의 범위를 넘을 수 없습니다.
제308조가 얹는 책임은 무엇인가
조문은 짧습니다. 전세권의 목적물을 전전세 또는 임대한 경우에는 전세권자가 전전세 또는 임대하지 아니하였으면 면할 수 있는 불가항력으로 인한 손해에 대하여 그 책임을 부담한다는 한 문장입니다.
두 번 읽어야 뜻이 잡힙니다. 핵심은 넘겨주지 않았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손해라는 한정입니다. 넘겨주었든 아니든 어차피 일어났을 손해까지 떠안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지진으로 건물 전체가 무너졌다면 누가 살고 있었든 결과가 같습니다. 반면 전전세권자가 사정이 있어 오래 집을 비운 사이에 동파가 번져 피해가 커졌다면, 전세권자 본인이 살고 있었다면 막았을 손해라는 평가가 가능합니다. 후자가 조문이 겨냥한 장면입니다.
왜 하필 불가항력인가
책임의 층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잘못이 있는 손해와 아무의 잘못도 아닌 손해는 처리 경로가 갈립니다.
누군가의 잘못으로 생긴 손해라면 원래의 법리로 처리하면 됩니다. 전전세권자의 과실이면 그 사람이, 전세권자의 과실이면 전세권자가 물어냅니다. 조문을 따로 둘 필요가 없습니다.
문제는 아무의 잘못도 아닌 손해입니다. 원칙대로라면 물건의 주인이 그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데, 전세권자가 스스로 선택해 남을 들여보낸 결과로 위험의 모양이 달라졌다면 그 선택을 한 쪽이 책임을 지는 것이 균형에 맞습니다. 제308조는 그 균형을 가중책임이라는 형태로 적어 둔 규정입니다.
집주인의 동의가 필요 없는 대신 위험은 넘긴 쪽이 진다는 교환으로 읽으면 이해가 쉽습니다. 조문 하나가 자유와 부담을 함께 얹어 둔 셈입니다.
전전세와 임대는 어떻게 다른가
조문은 둘을 나란히 적었지만 법적 성질은 다릅니다.
전전세는 물권을 새로 설정하는 것이라 등기를 해야 효력이 생깁니다. 임대는 채권 계약이므로 등기 없이 당사자 사이의 약정만으로 성립합니다. 새로 들어온 사람이 집주인에게 직접 무엇을 주장할 수 있는지가 여기서 갈립니다.
다만 제308조의 책임은 두 경우 모두에 붙습니다. 어느 방식을 택하든 위험 부담의 결론은 같다는 뜻입니다. 전전세를 택하면 등기 비용과 절차가 더 들지만 새로 들어오는 사람의 지위는 그만큼 단단해집니다. 무엇을 우선할지에 따라 방식이 갈립니다.
| 구분 | 전전세 | 임대 |
|---|---|---|
| 성질 | 물권 | 채권 |
| 성립 요건 | 등기 필요 | 합의로 성립 |
| 기간의 한계 | 원래 전세권의 존속기간 내 | 원래 전세권의 존속기간 내 |
| 제308조 책임 | 적용 | 적용 |
원래의 전세권이 끝나면 어떻게 되나
얹혀 있던 권리도 함께 흔들립니다. 전전세권은 원래의 전세권을 바탕으로 세워진 것이라 그 바탕이 사라지면 버틸 자리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기간을 정할 때부터 조심하셔야 합니다. 제306조가 존속기간 내에서라고 못 박았으므로, 원래 전세권의 남은 기간보다 긴 조건을 새 사람과 약속하면 그 초과 부분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됩니다.
제311조 제1항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정해진 용법대로 사용하고 수익하지 않으면 집주인이 전세권의 소멸을 청구할 수 있고, 제2항은 원상회복과 손해배상까지 예정합니다. 새로 들인 사람이 집을 다르게 쓰면 그 결과가 전세권자에게 돌아옵니다.
넘기기 전에 무엇을 확인하나
- 등기사항증명서 을구에 처분 금지 특약이 있는지
- 원래 전세권의 남은 존속기간과 만료일
- 건물에 걸린 보험의 계약자와 보상 범위
- 새로 들어올 사람의 사용 목적과 거주 형태
- 연락이 닿지 않을 때의 비상 연락 방법
보험을 점검하시는 편이 가장 실효적입니다. 제308조의 책임은 잘못이 없어도 지는 책임이어서 사후에 다투어 면하기가 쉽지 않고, 결국 손해를 누가 메울 재원을 갖고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주의
구두로만 사람을 들여 놓고 계약서를 쓰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사고가 나면 그 사람이 어떤 자격으로 살고 있었는지부터 다투게 되고, 관리 책임의 분담도 정해진 것이 없어 전세권자에게 불리하게 정리되기 쉽습니다. 짧은 기간이라도 서면을 남기십시오.
정리
민법 제306조는 전세권자에게 목적물을 전전세하거나 임대할 자유를 주고, 그 자유를 막으려면 설정행위로 금지하도록 했습니다. 기간은 원래 전세권의 존속기간을 넘지 못합니다.
그 자유에는 값이 붙어 있습니다. 제308조는 넘겨주지 않았더라면 면할 수 있었을 불가항력 손해까지 전세권자가 떠안도록 했습니다. 동의를 구하지 않아도 되는 대신 위험을 진다는 구조입니다. 집을 넘겨주실 계획이라면 등기부의 특약과 보험 관계를 먼저 확인하시고, 손해가 이미 발생한 상태라면 책임 범위를 변호사와 함께 가려 보시기 바랍니다.
참조 조문
민법 제306조, 제307조, 제308조, 제311조
본 글이 사건의 큰 그림을 그리시는 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구체적인 상담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법무법인 대한중앙 한병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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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집주인 동의 없이 전세권을 넘겨도 정말 괜찮습니까?
제306조 본문은 양도와 담보 제공, 전전세와 임대를 모두 허용합니다. 다만 같은 조 단서에 따라 설정행위로 금지할 수 있으므로 등기사항증명서에 그런 약정이 기재되어 있는지 확인하셔야 합니다.
태풍으로 건물이 파손되었는데 제가 책임을 집니까?
제308조는 전전세나 임대를 하지 않았다면 면할 수 있었던 손해로 범위를 한정합니다. 누가 살고 있었든 같은 결과였을 손해라면 그 범위를 벗어나므로, 피해 경위와 대응 가능성을 자료로 정리해 두십시오.
제 전세 기간보다 긴 기간으로 약속해도 됩니까?
제306조가 존속기간 내에서만 가능하도록 정하고 있어 초과 부분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됩니다. 새로 들어올 분에게 만료일을 미리 알리고 계약서에 기간을 명확히 적어 두셔야 분쟁이 줄어듭니다.
새로 들어온 사람이 집을 용도와 다르게 쓰고 있습니다.
제311조 제1항은 정해진 용법대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 소유자가 전세권의 소멸을 청구할 수 있게 하고 제2항은 원상회복과 손해배상을 예정합니다. 결과가 전세권자에게 돌아오므로 즉시 시정을 요구하고 그 사실을 서면으로 남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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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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