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군의 한 과수원 옆에 1990년대 초 지어진 창고가 있습니다. 창고 주인은 아버지에게서 건물만 물려받았고, 땅은 처음부터 이웃 문중 소유였습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쓰게 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모두 세상을 떠났습니다. 최근 문중이 땅을 정리하겠다며 창고를 철거하라는 내용증명을 보내왔습니다. 30년 넘게 아무 말 없이 써 왔으니 이제는 땅을 쓸 권리가 생긴 것 아니냐는 것이 창고 주인의 반문입니다.
소유권 말고 지상권도 시효로 얻을 수 있나
조문상으로는 가능합니다.
민법 제245조는 20년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공연하게 부동산을 점유한 사람이 등기함으로써 소유권을 취득한다고 정합니다. 그리고 제248조는 이 규정을 비롯한 제245조부터 제247조까지를 소유권 이외의 재산권 취득에 준용합니다. 지상권은 남의 땅에 건물이나 공작물, 수목을 소유하기 위해 그 땅을 쓰는 물권이므로, 이 준용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대로 옮겨 읽으면 요건은 이렇게 바뀝니다. 20년간 지상권자로서 땅을 쓰겠다는 의사로, 평온하고 공연하게 그 권리를 행사해 오고, 그 뒤 지상권 등기를 마쳐야 합니다. 시효를 채웠다고 저절로 권리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등기까지 가야 끝난다는 점은 소유권과 같습니다.
무엇이 지상권자로서의 사용인가
여기서 대부분의 사건이 막힙니다.
남의 땅 위에 내 건물이 서 있다는 사실은 여러 관계에서 똑같이 나타납니다. 땅을 빌린 임차인도, 공짜로 쓰게 해 준 사용대차의 차주도, 허락 없이 지은 무단 점유자도 겉모습은 같습니다. 이 가운데 지상권자처럼 행사했다고 볼 수 있는 경우는 한정적입니다.
소유권 시효취득에서는 제197조 제1항이 점유자를 소유의 의사로 점유한 것으로 추정해 줍니다. 그러나 지상권으로 옮겨 오면 그 추정을 그대로 쓰기 어렵습니다. 땅 주인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고 쓴 사람에게 어떤 권리로 썼는지를 묻는 것이니, 결국 창고 주인 쪽이 지상권 설정을 전제로 한 사정을 보여 줘야 하는 구조가 됩니다.
예를 들어 당초 지상권 설정 약정을 했지만 등기만 하지 않았다는 문서, 땅 주인이 건물 존속을 전제로 한 말을 남긴 기록 같은 것이 필요합니다. 아무 기록 없이 오래 썼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지료를 냈다면 오히려 불리한가
사정에 따라 다릅니다.
매년 땅값 명목의 돈을 냈다면 그 돈의 성격이 중요해집니다. 차임이라면 토지임대차였다는 증거가 되어 지상권 주장과 부딪칩니다. 지료라면 지상권을 전제로 한 관계로 읽힐 여지가 생깁니다. 영수증이나 송금 메모의 문구 하나가 방향을 바꿉니다.
또 하나 짚을 것은 시효 중단입니다. 제247조 제2항은 소멸시효 중단에 관한 규정을 준용합니다. 땅 주인이 철거 소송을 냈거나, 창고 주인이 땅 주인 권리를 인정하는 취지의 확인서를 써 준 적이 있다면 그 시점에 진행이 끊겼을 수 있습니다. 사례의 내용증명도 그 자체만으로는 확정적 중단 사유가 아니지만, 6개월 안에 소송이 이어지면 의미가 달라집니다.
다른 길은 없나
지상권 시효취득이 어렵다면 다른 근거를 나란히 놓고 비교해야 합니다.
| 방법 | 근거 | 어떤 사정에 맞나 | 약점 |
|---|---|---|---|
| 지상권 시효취득 | 민법 제248조, 제245조 | 처음부터 지상권자처럼 땅을 써 온 경우 | 지상권자로서의 의사를 증명하기 어려움 |
| 토지 소유권 시효취득 | 민법 제245조 | 경계를 착오해 자기 땅으로 알고 써 온 경우 | 남의 땅인 줄 알았다면 소유의 의사가 부정될 수 있음 |
| 건물 등기로 토지임대차 대항 | 민법 제622조 | 땅을 빌리기로 약정했고 건물을 등기한 경우 | 임대차 약정이 있어야 함, 건물 멸실 시 효력 상실 |
| 토지임차인의 매수청구 | 민법 제643조, 제283조 | 임대차 기간이 끝났는데 건물이 남은 경우 | 토지 소유자가 갱신을 거절해야 매수청구로 넘어감 |
경매로 땅과 건물의 주인이 갈린 경우라면 제366조의 법정지상권도 검토 대상입니다. 사례처럼 처음부터 주인이 달랐던 창고에는 해당하기 어렵습니다.
네 갈래 중 어느 것이 맞는지는 처음 건물을 지을 때 무슨 약속이 있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 기록을 찾는 일이 출발점입니다.
시효를 채웠다면 등기는 어떻게 하나
땅 주인이 순순히 협력하지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 땅 주인을 상대로 지상권설정등기절차 이행을 구하는 소송을 냅니다.
- 승소 판결이 확정되면 부동산등기법 제23조 제4항에 따라 단독으로 등기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 등기관은 제69조에 따라 지상권 설정의 목적과 범위를 기록하고, 땅 일부에만 설정되면 그 부분 도면 번호를 적습니다.
- 소송 중 땅이 제3자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처분금지가처분을 함께 검토합니다.
마지막 항목이 특히 중요합니다. 시효가 완성된 뒤에도 등기 전에 땅이 다른 사람에게 팔리면 그 매수인에게 주장하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서두를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상권
타인의 토지에 건물 기타 공작물이나 수목을 소유하기 위해 그 토지를 사용하는 물권입니다(민법 제279조). 임차권과 달리 땅 주인이 바뀌어도 등기만 되어 있으면 새 주인에게 그대로 주장할 수 있고, 남에게 양도하거나 그 땅을 임대할 수도 있습니다.
정리
민법 제248조 덕분에 지상권도 20년 점유로 취득할 수 있는 길은 열려 있습니다. 하지만 남의 땅인 줄 알고 쓴 사람은 어떤 권리로 썼는지를 스스로 보여 줘야 하고, 그 벽이 높습니다. 지료나 차임을 낸 기록, 땅 주인과 주고받은 문서가 결론을 좌우합니다.
철거 요구를 받았다면 지상권 시효취득만 고집하기보다 토지임대차, 매수청구 같은 다른 근거를 함께 비교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건물을 지을 당시의 기록부터 찾고, 변호사와 함께 가장 단단한 근거를 고르시기 바랍니다.
참조 조문
민법 제168조, 제174조, 제197조, 제199조, 제245조, 제247조, 제248조, 제279조, 제283조, 제366조, 제622조, 제643조 · 부동산등기법 제23조, 제69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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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아버지가 쓰던 기간도 20년에 합칠 수 있나요?
제199조에 따라 승계인은 자기 점유만 주장하거나 앞 사람의 점유를 합쳐 주장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합치면 앞 사람 점유의 하자도 함께 이어받는다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땅 주인이 바뀌었는데 새 주인에게도 주장할 수 있나요?
시효 완성 전에 바뀌었는지, 완성 뒤 등기 전에 바뀌었는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소유권 이전 날짜를 등기부로 먼저 확인하십시오.
창고를 헐고 새로 지으면 시효가 끊기나요?
땅을 계속 같은 목적으로 쓰고 있다면 점유 자체가 끊긴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공사 사이 공백과 용도 변화가 다툼의 소재가 될 수 있으니 기록을 남겨 두십시오.
철거 내용증명을 받았는데 바로 대응해야 하나요?
내용증명은 그 자체로 끝나는 절차가 아니지만 뒤이어 소송이 들어올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 가진 자료와 쓸 수 있는 근거를 정리해 두면 답변서 작성이 빨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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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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