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외곽에 1,600제곱미터짜리 땅을 가진 박 씨는 큰길로 나가려면 이웃 밭 가장자리를 지나야 했습니다. 십여 년 전 이웃과 통행지역권을 설정하고 등기까지 해 두었습니다. 최근 박 씨는 땅을 세 필지로 나눠 두 필지를 각각 다른 사람에게 팔았습니다. 그러자 이웃이 길을 쓸 권리는 박 씨 한 사람에게 준 것이니 새 주인들은 지나다니지 말라고 합니다. 땅이 쪼개지고 주인이 바뀌면 지역권도 함께 쪼개지는지, 아니면 사라지는지를 민법 조문으로 따라가 봅니다.
지역권은 사람에게 붙나, 땅에 붙나
땅에 붙습니다.
민법 제291조는 지역권자가 일정한 목적을 위하여 타인의 토지를 자기 토지의 편익에 이용하는 권리를 가진다고 정합니다. 편익을 받는 땅을 요역지, 부담을 지는 땅을 승역지라고 부릅니다. 권리의 목적이 처음부터 사람의 편의가 아니라 땅의 쓸모를 높이는 데 있습니다.
제292조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제1항은 지역권이 요역지 소유권에 부종하여 이전한다고 하고, 제2항은 요역지와 분리하여 양도하거나 다른 권리의 목적으로 하지 못한다고 정합니다. 땅을 팔면 길을 쓸 권리도 따라가고, 길을 쓸 권리만 떼어 다른 사람에게 팔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이웃의 주장은 출발점부터 어긋납니다. 박 씨 개인에게 준 권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 필지로 나뉘면 지역권도 셋이 되나
각 부분을 위해 그대로 남습니다.
제293조 제2항 본문은 토지의 분할이나 토지의 일부양도의 경우 지역권은 요역지의 각 부분을 위하여 존속한다고 정합니다. 하나의 권리가 셋으로 쪼개져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나뉜 땅 각각이 원래의 편익을 계속 누린다는 구조입니다.
승역지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항은 승역지의 각 부분에도 지역권이 존속한다고 적었습니다. 이웃이 자기 밭을 나눠 팔아도 길이 지나는 부분을 산 사람은 그 부담을 함께 떠안습니다.
이 규정을 지역권의 불가분성이라고 부릅니다. 땅의 경계가 바뀌어도 권리의 범위가 쪼개지지 않게 하려는 장치입니다.
요역지와 승역지
요역지는 지역권으로 편익을 얻는 땅, 승역지는 그 편익을 위해 이용되는 땅입니다. 통행지역권이라면 길이 필요한 쪽이 요역지, 길이 지나가는 쪽이 승역지입니다. 두 땅의 등기기록에는 지역권이 있다는 사실이 각각 기록됩니다.
길과 상관없는 필지도 권리를 가지나
여기서 조문의 단서가 작동합니다.
제293조 제2항 단서는 지역권이 토지의 일부분에만 관한 것인 때에는 다른 부분에 대하여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정합니다. 처음 지역권을 설정할 때 그 편익이 땅 전체를 위한 것이었는지, 일부분만을 위한 것이었는지가 갈림길이 됩니다.
박 씨의 땅이 원래 맹지여서 전체가 큰길로 나가기 위해 그 길이 필요했다면 세 필지 모두가 권리를 이어받습니다. 반대로 땅의 한쪽 끝 창고에 트럭을 대기 위해서만 설정했다면, 창고가 없는 필지는 그 권리를 주장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설정 계약서와 등기기록의 목적·범위 기재가 결정적입니다. 기록에 편익의 대상이 어디로 적혀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 지역권 설정 계약서의 목적 조항과 첨부 도면
- 요역지·승역지 양쪽의 등기사항증명서에 적힌 지역권 내용
- 분할 전후의 지적도와 각 필지의 진입 경로
- 분할 당시 매매계약서에 통행에 관한 특약이 있었는지
공유로 산 경우 한 사람이 포기하면 끝나나
한 사람의 지분만으로는 지역권을 없애지 못합니다.
제293조 제1항은 토지공유자의 1인이 지분에 관하여 그 토지를 위한 지역권 또는 그 토지가 부담한 지역권을 소멸하게 하지 못한다고 정합니다. 두 사람이 한 필지를 공동으로 샀는데 그중 한 사람이 이웃과 따로 만나 길을 쓰지 않겠다고 약속해도, 다른 공유자의 권리까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취득 쪽도 같은 방향입니다. 제295조 제1항은 공유자의 1인이 지역권을 취득하면 다른 공유자도 이를 취득한다고 합니다. 한 사람이 얻은 권리는 모두의 것이 되고, 한 사람이 버린다고 모두의 것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래 안 쓰면 사라지나
사라질 수 있습니다.
제162조 제2항은 채권 및 소유권 이외의 재산권이 2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고 정합니다. 지역권도 이 범위에 들어가므로, 나뉜 필지의 새 주인들이 오랫동안 그 길을 쓰지 않으면 권리가 위태로워집니다.
공유라면 제296조가 버팀목이 됩니다. 요역지가 여러 사람의 공유인 경우 그 1인에 의한 지역권 소멸시효의 중단 또는 정지는 다른 공유자를 위하여도 효력이 있습니다. 공유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꾸준히 길을 쓰면 나머지 공유자의 권리도 함께 지켜진다는 뜻입니다.
분할로 각자 단독 소유가 되었다면 사정이 다릅니다. 그때부터는 필지마다 따로 시효를 따지게 되므로, 각 주인이 자기 필지를 위해 실제로 길을 쓰는 흔적을 남겨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이웃이 길을 막으면 무엇을 할 수 있나
방해를 없애 달라고 청구할 수 있습니다.
제301조는 소유물 방해제거·방해예방 청구에 관한 제214조를 지역권에 준용합니다. 이웃이 철책이나 차단기를 세워 새 주인들의 통행을 막으면, 각 필지 주인은 방해의 제거를 직접 청구할 수 있습니다. 박 씨를 거칠 필요가 없습니다.
먼저 내용증명으로 지역권의 근거와 분할 사실을 알리고 장애물 제거를 요구합니다. 그래도 막혀 있다면 소송과 함께 통행을 임시로 확보하는 가처분을 검토합니다.
공사 차량이 드나들어야 하는 시기라면 하루 지연이 곧 비용입니다.
정리
지역권은 사람이 아니라 땅에 붙은 권리입니다. 요역지를 쪼개 팔아도 각 부분을 위해 그대로 남고, 승역지가 나뉘어도 각 부분이 부담을 이어받습니다.
예외는 편익이 처음부터 땅의 일부분에만 관한 것이었을 때입니다. 그 경우 길과 상관없는 필지는 권리를 주장하기 어렵습니다. 공유자 한 사람이 혼자 권리를 없애지 못하고, 한 사람의 시효 중단은 모두에게 미칩니다.
분할 매각을 앞두고 있거나 이미 길이 막혔다면, 설정 계약서와 양쪽 등기기록, 지적도를 모아 변호사와 함께 권리의 범위부터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참조 조문
민법 제162조, 제214조, 제291조, 제292조, 제293조, 제294조, 제295조, 제296조, 제301조
본 글이 일반적 안내였다면, 본인 사안은 사실관계가 조금만 달라져도 결론이 크게 달라집니다. 비슷한 상황으로 고민 중이시라면 정식 상담을 권합니다.
법무법인 대한중앙 한병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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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분할 등기를 할 때 지역권을 따로 옮겨 적어야 하나요?
지역권은 분할된 각 부분을 위해 존속하므로 권리 자체는 따라갑니다. 다만 등기기록에 어떻게 옮겨 기록되었는지는 분할 후 각 필지의 등기사항증명서를 떼어 직접 확인해 두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이웃이 길을 다른 위치로 옮겨 주겠다고 합니다.
위치를 바꾸는 것은 지역권의 내용을 바꾸는 일이어서 당사자 합의가 필요합니다. 새 위치가 원래의 편익을 그대로 보장하는지, 변경 내용을 등기에 반영할지를 함께 정해 두셔야 합니다.
등기 없이 오래 다닌 길도 지역권이 되나요?
지역권의 시효취득은 계속되고 표현된 것에 한해 인정되고, 부동산 점유취득시효 규정을 준용합니다. 요건이 엄격하므로 통행 기간과 형태를 입증할 자료가 충분한지부터 따져 보셔야 합니다.
길이 지나는 땅을 산 사람도 통행을 참아야 하나요?
승역지가 나뉘거나 팔려도 지역권은 그 부분에 존속합니다. 매수 전에 등기사항증명서에서 지역권 기재를 확인하지 않았다면 그 부담을 그대로 떠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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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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