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동 빌라에 월세로 들어온 지 1년 반이 지났습니다. 여름 장마 뒤 욕실 천장에서 물이 새더니 안방 벽지까지 검게 곰팡이가 번졌습니다. 집주인은 환기를 안 한 세입자 탓이라며 수리를 미루고, 오히려 재계약 때 월세를 8만 원 올리겠다고 합니다. 소송을 하자니 수리비 몇십만 원에 비해 시간과 비용이 너무 커 보입니다. 이럴 때 떠오르는 곳이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입니다. 하지만 조정이 모든 다툼에 맞는 도구는 아닙니다. 어떤 분쟁은 조정으로 빨리 풀리고, 어떤 분쟁은 조정에서 시간만 잃습니다. 고르기 전에 따져 볼 기준은 다섯 가지입니다.
조정위원회가 다룰 수 있는 다툼인가
첫 번째 관문은 대상입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위원회가 심의·조정하는 분쟁을 열거합니다. 차임이나 보증금의 증감, 임대차 기간, 보증금이나 집의 반환, 집의 유지·수선 의무, 그리고 대통령령이 정하는 그 밖의 주택임대차 분쟁입니다. 위 사례의 곰팡이 수리와 월세 인상은 둘 다 목록 안에 정확히 들어옵니다.
대상이 되는지 애매한 다툼도 있습니다. 옆집과의 층간 소음처럼 임대차 계약 바깥에서 생긴 문제는 이 위원회의 몫이 아닙니다. 신청서 자체로 주택임대차 분쟁이 아닌 것이 명백하면 위원장이 신청을 각하합니다.
상대가 테이블에 앉을 사람인가
조정을 고를 때 가장 먼저 저울에 올릴 것은 상대의 태도입니다.
위원회 조정은 법원 재판과 달리 상대를 강제로 끌어올 힘이 없습니다. 피신청인이 조정 절차에 응하지 않겠다고 알려 오면 위원장은 신청을 각하해야 합니다. 집주인이 전화를 받지 않고 문자에 답이 없는 상태라면 위원회에서 첫 단계부터 멈출 가능성이 큽니다.
반대로 집주인이 말은 통하는데 금액이나 책임 범위에서만 생각이 다르다면 조정이 잘 맞습니다. 제3자가 사진과 현장을 보고 수리 책임을 나눠 주면 체면을 덜 상하고 물러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 이어질 임대차라면 관계를 덜 해친다는 점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얼마나 빨리 결론이 나나
법이 기한을 박아 두었습니다.
접수일을 기준으로 60일이 원칙적인 처리 기한입니다. 사정이 있으면 위원회 의결로 최대 30일이 더해지니, 늦어도 석 달이면 매듭이 지어집니다. 곰팡이는 겨울이 오기 전에 잡아야 하는 문제라 이 속도 차이가 곧 실익입니다.
조정위원회에는 조사 권한도 있습니다. 위원이나 사무국 직원이 집을 직접 보러 올 수 있고, 양쪽에게 자료를 내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월세 다툼이라면 위원장이 시·도지사에게 인근 지역의 확정일자 자료와 전월세 전환율 같은 자료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적정 월세를 두고 감정싸움을 벌이는 대신 동네 시세라는 공통의 잣대를 놓고 이야기하게 되는 셈입니다.
합의문이 실제로 돈과 수리를 받아 낼 힘이 있나
조정의 약점은 여기서 드러나기 쉽습니다.
위원회가 조정안을 보내면 각 당사자는 통지받은 날부터 14일 안에 서면으로 수락해야 합니다. 이 기간에 답하지 않으면 거부로 봅니다. 양쪽이 수락해야 조정안과 같은 내용의 합의가 성립합니다.
그 합의가 곧바로 강제집행으로 이어지려면 한 가지가 더 필요합니다. 금전 지급이나 집의 인도에 대해 강제집행을 승낙한다는 취지가 조정서에 적혀야 합니다. 이 문구가 있는 조정서 정본은 집행권원과 같은 효력을 가집니다. 수리 약속처럼 돈이 아닌 의무는 이 방식으로 집행하기 어렵다는 점도 알아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수리 다툼이라면 기한 안에 고치지 않으면 세입자가 고치고 비용을 얼마까지 청구한다는 식으로 금액을 붙여 합의하는 편이 낫습니다.
조정안을 받아 들었을 때 볼 것
· 수리를 끝낼 날짜가 달력의 날짜로 적혀 있는지
· 날짜를 넘기면 누가 고치고 비용 한도가 얼마인지
· 월세를 조정한다면 적용 시작 달이 적혀 있는지
· 돈을 주고받는 부분에 강제집행 승낙 문구가 있는지
· 수락 기한 14일이 언제 끝나는지
조정이 오히려 손해가 되는 경우는
보증금을 못 받는 다툼이 대표적입니다.
집주인이 돌려줄 돈이 없다고 말하는 상황이라면 조정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언제까지 주겠다는 약속뿐입니다. 그 사이 세입자가 이사를 가 버리면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이 흔들립니다. 이런 경우에는 임차권등기명령으로 권리를 먼저 묶어 두고 소송으로 판결을 받는 순서가 맞습니다.
위원회가 스스로 조정을 거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분쟁이 성질상 조정하기에 적당하지 않거나 부당한 목적으로 신청했다고 보면 조정을 하지 않기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사기 의심이 짙은 전세처럼 사실관계를 수사로 밝혀야 하는 다툼이 여기에 가깝습니다.
| 지금 상황 | 먼저 고려할 길 | 이유 |
|---|---|---|
| 곰팡이·누수 수리를 누가 할지, 수리비를 얼마나 나눌지 다툼 |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 유지·수선 분쟁이 법에 명시된 조정 대상이고, 현장 조사가 가능함 |
| 월세 인상이나 감액 폭이 서로 맞지 않음 |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 인근 확정일자 자료, 전월세 전환율 같은 시세 자료를 위원회가 요청할 수 있음 |
| 만기가 지났는데 집주인이 돌려줄 돈이 없다고 함 | 임차권등기명령과 보증금반환 소송 | 돈이 없는 상대와의 합의는 집행력을 얻어도 받을 재산이 문제 |
| 집주인이 연락을 끊었거나 처음부터 대화를 거부 | 법원 조정 또는 소송 | 위원회 조정은 상대가 응하지 않겠다고 하면 각하됨 |
| 계약 자체가 사기로 의심되는 전세 | 수사기관 고소와 민사 소송 병행 | 조정으로 풀 성질의 분쟁이 아니라고 보아 조정을 하지 않을 수 있음 |
순서를 잘못 고르면 무엇을 잃나
위원회 조정과 법원 절차는 동시에 굴러가지 않습니다.
같은 분쟁에 대해 이미 소송을 냈거나 민사조정법에 따른 법원 조정을 신청했다면 위원회는 신청을 각하합니다. 위원회 신청 뒤에 소송을 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를 고르면 다른 하나는 접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 다툼이 위원회 대상인지, 상대가 대화에 응할지를 먼저 판단합니다.
- 조정을 고른다면 사진, 수리 견적, 문자 기록, 계약서를 한 묶음으로 정리해 관할 위원회에 신청합니다.
- 조정안이 오면 14일 기한을 달력에 표시하고, 수락 전 강제집행 승낙 문구와 금액 표시를 확인합니다.
- 결렬되거나 각하되면 그때 모은 자료로 소송이나 법원 조정을 준비합니다.
법원 조정은 성립하면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이 있어 판결에 가까운 힘을 가집니다. 상대가 버틸 기미가 보이면 처음부터 이쪽을 고르는 것도 방법입니다.
정리
수리 책임과 월세 폭처럼 사실을 함께 보고 선을 긋는 다툼은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가 빠르고 부담이 적습니다. 60일 안팎의 기한, 현장 조사, 시세 자료 요청이 강점입니다.
상대가 응하지 않을 사람이거나 돌려줄 돈 자체가 없는 경우에는 조정이 시간만 잡아먹습니다.
조정을 고른다면 합의문에 금액과 강제집행 승낙 문구가 들어가는지를 끝까지 챙기십시오. 그 한 줄이 약속과 집행 사이의 거리를 없앱니다.
참조 조문
주택임대차보호법 제14조, 제21조, 제22조, 제23조, 제24조, 제25조, 제26조, 제27조 · 민사조정법 제29조 · 민법 제626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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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대한중앙 한병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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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조정위원회는 어디에 신청하나요?
집이 있는 지역을 관할하는 조정위원회에 신청합니다. 대한법률구조공단과 한국토지주택공사 등의 지부나 사무소에 위원회가 있고, 시·도가 따로 둔 곳도 있으니 관할을 먼저 확인하십시오.
집주인이 조정안을 받고 답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통지받은 날부터 14일 안에 서면으로 수락하지 않으면 조정을 거부한 것으로 봅니다. 그때는 소송이나 법원 조정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조정 중에 곰팡이가 더 번지면 제가 먼저 고쳐도 되나요?
집을 쓰는 데 필요한 수리라면 먼저 고치고 필요비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조정 중이라면 수리 전후 사진과 견적을 위원회에도 제출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조정서에 강제집행 승낙 문구가 없으면 쓸모가 없나요?
합의 자체는 남지만 그것만으로 바로 강제집행을 할 수는 없습니다. 상대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그 합의를 근거로 다시 소송을 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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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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