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포동 2층에 카페를 연 지 여덟 달째, 장마가 시작되자 천장 모서리에서 물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달 시스템 에어컨 실외기도 멈췄습니다. 건물주에게 연락하니 계약서 특약란의 ‘수선은 임차인 부담’ 한 줄을 사진으로 보내 왔습니다. 임차인은 그런 뜻으로 서명한 기억이 없습니다. 상가 수선비 다툼은 대개 계약서의 이 한 줄에서 시작됩니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표준계약서에 수선비 분담 항목을 따로 두도록 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상가 표준계약서는 누가 만들고 무엇을 담나
법무부가 만들어 권하는 서식입니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19조는 법무부장관이 국토교통부장관과 협의를 거쳐 상가건물임대차표준계약서를 정하고 그 사용을 권장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조문은 서식에 들어갈 내용으로 보증금, 차임액, 임대차기간, 수선비 분담, 관리비 부과 항목을 직접 열거했습니다.
법률이 계약서 항목을 이름까지 짚어 적은 것은 드문 일입니다. 그만큼 이 다섯 가지에서 분쟁이 잦다는 뜻입니다. 특히 수선비와 관리비는 계약할 때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다가 고장이 나는 날 처음 펼쳐 보는 항목입니다.
‘권장’이라는 말에 주의하십시오. 쓰지 않아도 계약은 유효합니다. 부동산 중개사무소 양식이나 직접 만든 계약서로도 충분히 계약이 성립합니다.
계약서에 아무 말이 없으면 누가 고치나
민법이 기본값을 정해 두었습니다.
민법 제623조는 임대인이 목적물을 인도하고 계약 존속 중 그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할 의무를 진다고 정합니다. 천장 누수처럼 영업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하자라면 이 의무 안으로 들어옵니다. 임차인이 급한 마음에 먼저 고쳤다면 제626조 제1항에 따라 보존에 필요했던 비용의 상환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고장이 임대인 몫은 아닙니다. 전구나 수전 패킹처럼 쓰다 보면 닳는 부분, 임차인이 직접 들인 인테리어와 집기는 사정이 다릅니다. 결국 어디까지가 건물이고 어디부터가 영업 설비인지를 나누는 문제가 됩니다.
‘수선은 임차인 부담’ 한 줄은 어디까지 통하나
범위가 문제입니다.
민법의 기본값은 당사자 합의로 바꿀 수 있습니다. 문제는 바꾼 범위입니다. 포괄적으로 적힌 한 줄이 건물 구조나 방수, 배관 교체 같은 큰 공사까지 임차인에게 넘긴 것인지는 다툼이 됩니다. 실무에서는 이런 문구를 통상 생길 수 있는 소규모 수선에 한정해 읽는 경우가 많습니다.
임대인 쪽에서도 이 모호함은 불리합니다. 큰 공사를 임차인에게 맡기려 했다면 그 범위를 항목별로 적어 두었어야 합니다. 표준계약서가 수선비 분담을 별도 칸으로 둔 것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수선비 칸에는 무엇을 어떻게 적나
설비별로 나누어 적는 것이 가장 분명합니다.
| 항목 | 적어 둘 내용 |
|---|---|
| 지붕·외벽·방수·구조체 | 누가 부담하는지, 하자 통지 뒤 며칠 안에 착수하는지 |
| 급배수·전기 간선 | 건물 공용 부분과 점포 안쪽 배관의 경계 지점 |
| 냉난방기 | 기존 설치분인지 임차인이 들인 것인지, 교체와 소모품 교환의 구분 |
| 인테리어·간판 | 임차인 부담 원칙과 종료 때 철거 범위 |
| 소액 수선 | 1회 얼마 이하는 임차인이 처리한다는 금액 기준 |
| 관리비 | 청소·승강기·공용전기 등 부과 항목과 산정 방식 |
계약 기간 중 임대인이 바뀌는 경우도 생각해 두어야 합니다. 건물이 팔리면 새 소유자는 계약서에 적힌 조건을 기준으로 수선 요구에 답합니다. 구두로 ‘그 정도는 내가 고쳐 주겠다’고 했던 약속은 전 소유자와 함께 사라지기 쉽습니다.
서명 전에 확인할 것
· 수선비 분담 칸이 비어 있거나 ‘협의’로만 적혀 있지 않은지
· 임차인 부담 항목에 지붕·방수·구조체가 들어가 있지 않은지
· 소액 수선의 금액 기준이 숫자로 적혀 있는지
· 관리비 부과 항목과 산정 방식이 별지로라도 붙어 있는지
금액 기준을 넣을 때는 숫자를 비워 두지 마십시오. 빈칸은 나중에 서로 다른 숫자로 기억됩니다.
보증금이 큰 상가에도 이 조항이 적용되나
적용됩니다.
이 법은 지역별로 정한 보증금액을 넘는 임대차에는 상당수 조항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2조 제3항은 그 한도를 넘는 임대차에도 대항력, 계약갱신요구, 권리금 보호 조항 등과 함께 제19조를 적용한다고 따로 정했습니다. 환산보증금이 큰 대형 점포라도 표준계약서를 쓰고 수선비 분담을 적어 두는 일의 의미는 같습니다.
여기서 환산보증금은 보증금만 보는 숫자가 아닙니다. 제2조 제2항에 따라 월세가 있으면 그 차임에 대통령령이 정한 비율을 곱한 금액을 보증금에 더해 계산합니다. 월세가 높은 1층 점포는 보증금이 작아도 한도를 넘기 쉽습니다. 그래도 제19조는 그대로 따라옵니다.
그래도 다툼이 생기면 어디로 가나
소송 전에 조정이 있습니다.
제20조는 상가건물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를 두고, 심의·조정 대상으로 임차상가건물의 유지·수선 의무에 관한 분쟁을 명시했습니다. 위원회는 대한법률구조공단 지부, 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한국감정원(지금의 한국부동산원)의 지사 등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 하자를 발견한 날 사진과 영상을 찍고, 영업에 미친 영향을 날짜별로 메모합니다.
- 임대인에게 문자나 내용증명으로 하자를 알리고 수선을 요청합니다.
- 계약서의 수선비 조항과 관리비 항목을 다시 읽고 어느 칸에 해당하는지 확인합니다.
- 답이 없거나 의견이 갈리면 조정위원회에 신청하거나 소송을 검토합니다.
정리
상가 수선비 분쟁은 대부분 계약서가 모호한 데서 시작됩니다. 제19조는 표준계약서에 수선비 분담과 관리비 부과 항목을 적도록 권하고, 이 조항은 보증금 규모와 상관없이 적용됩니다.
아무 약정이 없으면 민법이 정한 대로 임대인이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할 의무를 지고, 한 줄짜리 포괄 특약은 큰 공사까지 덮지 못할 수 있습니다.
계약 전이라면 설비별로 나누어 적고, 이미 다툼이 생겼다면 조정과 소송 중 무엇이 나은지를 계약서와 사진을 들고 변호사와 따져 보시기 바랍니다.
참조 조문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2조, 제19조, 제20조 · 민법 제623조, 제626조
본 글이 사건의 큰 그림을 그리시는 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구체적인 상담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법무법인 대한중앙 한병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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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표준계약서를 안 쓰면 불이익이 있나요?
사용을 권장하는 서식이어서 쓰지 않아도 계약은 유효합니다. 다만 수선비와 관리비 항목이 빠진 계약서는 고장이 났을 때 다툼의 출발점이 되기 쉬우니 같은 항목을 특약으로라도 적어 두십시오.
천장 누수를 제가 먼저 고쳤습니다. 비용을 받을 수 있나요?
건물 보존에 필요한 수선이었다면 필요비로 상환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고치기 전 사진, 임대인에게 알린 기록, 업체 견적과 영수증을 함께 보관하십시오.
에어컨은 제가 설치했는데 고장 수리비는 누가 내나요?
임차인이 들인 설비라면 원칙적으로 임차인이 관리합니다. 기존에 건물에 붙어 있던 설비인지가 갈림길이므로 계약서와 입주 당시 사진으로 설치 주체를 확인해 보십시오.
관리비 항목이 계약서에 없는데 매달 청구됩니다.
부과 항목과 산정 방식을 계약서에 적도록 한 취지에 비추어 근거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항목별 내역을 서면으로 받아 보고, 합의되지 않은 항목은 이의를 남겨 두십시오.
법무법인 대한중앙 | 해운대 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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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10-12
대표 변호사 한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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