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 사 둔 아파트에 동생 부부가 들어가 산 지 4년이 되었습니다. 월세는 한 번도 오가지 않았고, 관리비와 가스요금만 동생이 냈습니다. 그러다 형이 사업 자금 때문에 집을 내놓겠다며 석 달 안에 비워 달라고 합니다. 동생은 전입신고도 했으니 세입자로서 2년은 더 살 수 있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답은 그 집을 쓰는 대가로 무엇을 주고받기로 했는지에서 갈립니다. 같은 집, 같은 전입신고라도 계약의 이름이 달라지면 보호의 크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돈을 내지 않았다면 어떤 계약이 되나
민법은 남의 물건을 빌려 쓰는 계약을 두 갈래로 나눕니다.
제618조는 임대차를 한쪽이 목적물을 쓰게 하고 상대방이 그 대가로 차임을 지급하기로 약정하는 계약으로 정의합니다. 차임이라는 대가가 계약의 뼈대입니다. 반면 제609조의 사용대차는 무상으로 쓰게 하고, 다 쓴 뒤 그 물건을 돌려주기로 하는 계약입니다.
그러니 가족이나 지인에게 집을 공짜로 내준 경우는 원칙적으로 사용대차입니다. 계약서를 쓰지 않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말로 한 약속도 계약이고, 그 약속의 내용이 무상 사용이면 법은 그것을 임대차로 고쳐 읽지 않습니다.
이름이 중요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세입자를 지키는 장치들이 거의 전부 임대차에만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관리비를 냈으면 월세를 낸 것 아닌가
그렇게 보기는 어렵습니다.
제611조 제1항은 빌려 쓰는 사람이 통상의 필요비를 스스로 부담한다고 정합니다. 관리비, 전기·가스요금, 소소한 수리비처럼 집을 쓰는 동안 자연히 드는 돈은 원래 쓰는 사람 몫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냈다고 해서 집을 쓰는 대가를 치렀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실무에서도 관리비나 재산세 일부를 대신 낸 정도로는 차임 약정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달라지는 경우는 있습니다. 매달 정해진 금액을 집주인 계좌로 보내고 그 돈이 실제로 집을 쓰는 값으로 오갔다면, 액수가 시세보다 적더라도 임대차로 볼 여지가 생깁니다. 이체 메모에 무엇이라고 적혔는지, 금액이 일정했는지가 증거가 됩니다.
결국 다툼이 생기면 돈의 성격을 보여 주는 기록이 결론을 정합니다. 기억만으로는 버티기 어렵습니다.
세입자 보호법은 왜 적용되지 않나
주택임대차보호법 제2조는 이 법이 주거용 건물의 임대차에 적용된다고 범위를 정해 두었습니다. 사용대차는 그 문 안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전입신고를 마쳤더라도 제3조의 대항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대항력은 임대차를 전제로 집이 팔려도 새 주인에게 계약을 주장할 수 있게 하는 힘인데, 출발점이 되는 임대차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4조가 기간을 정하지 않은 임대차를 2년으로 보는 규정도 마찬가지로 쓸 수 없습니다.
집이 팔리거나 경매로 넘어가면 결과가 분명해집니다. 새 주인은 무상으로 살던 사람과 맺은 약속을 이어받지 않습니다. 비워 달라는 요구에 맞설 근거가 사실상 없습니다.
| 구분 | 무상으로 빌려 씀 | 보증금만 맡긴 전세 | 월세를 내는 임대차 |
|---|---|---|---|
| 민법상 성격 | 사용대차 | 임대차와 같이 취급 | 임대차 |
| 주택임대차보호법 | 적용되지 않음 | 제12조로 준용됨 | 적용됨 |
| 집이 팔렸을 때 | 새 주인에게 버틸 근거가 없음 | 요건을 갖췄다면 새 주인이 지위를 이어받음 | 요건을 갖췄다면 새 주인이 지위를 이어받음 |
| 기간을 정하지 않았을 때 | 쓰는 목적이 끝나거나 충분한 기간이 지나면 돌려줌 | 2년으로 봄 | 2년으로 봄 |
보증금만 맡긴 전세는 다르다
월세가 없다고 모두 무상은 아닙니다.
목돈을 맡기고 그 돈의 운용 이익을 집 쓰는 값으로 갈음하는 전세는 우리 거래에서 오래된 방식입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12조는 등기하지 않은 전세계약에도 이 법을 준용하고, 전세금을 임대차의 보증금으로 본다고 정합니다. 매달 내는 돈이 없어도 보증금을 맡겼다면 세입자 보호를 받을 길이 열려 있다는 뜻입니다.
가족 사이에서는 이 경계가 흐려집니다. 들어갈 때 돈을 건넸지만 그것이 보증금이었는지, 빌려준 돈이었는지, 그냥 도와준 돈이었는지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습니다. 송금 시점이 입주 직전인지, 금액이 주변 전세 시세와 비슷한지, 나갈 때 돌려받기로 했는지를 함께 따져 보아야 합니다.
어느 쪽으로 정리되느냐에 따라 그 돈을 돌려받는 순서와 방법까지 달라집니다.
공짜로 빌려준 집은 언제 돌려받을 수 있나
빌려준 쪽이 무작정 당장 나가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613조가 반환 시기를 정해 두었습니다.
- 반환할 날짜를 약속했다면 그날 돌려받습니다.
- 날짜 약속이 없으면 계약이나 집의 성질에 따른 사용이 끝난 때가 반환 시점입니다. 예컨대 아이 학교 졸업까지 쓰기로 했다면 졸업이 기준이 됩니다.
- 사용이 끝나지 않았더라도 쓰기에 충분한 기간이 지났다면 빌려준 사람이 언제든 계약을 해지할 수 있습니다.
- 빌린 사람이 허락 없이 다른 사람에게 집을 쓰게 하거나 정해진 용법을 어기면 제610조에 따라 해지할 수 있습니다.
- 빌린 사람이 사망하거나 파산선고를 받으면 제614조에 따라 해지할 수 있습니다.
사례의 4년은 충분한 기간이 지났다고 볼 여지가 큽니다. 다만 해지를 알린 뒤 이사할 시간을 얼마나 주어야 하는지는 사정에 따라 다투어질 수 있으니, 날짜를 정해 서면으로 통지하는 편이 깔끔합니다.
나가는 쪽은 무엇을 챙길 수 있나
빈손으로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615조는 반환할 때 원상으로 회복하되 직접 붙여 둔 물건은 떼어 갈 수 있다고 정합니다. 직접 설치한 붙박이장이나 조명이 여기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집의 값을 올린 공사비라면 제611조 제2항이 준용하는 규정을 거쳐 제203조의 유익비 상환을 따져 볼 수 있는데, 가치 증가가 남아 있어야 하고 금액은 집주인이 지출액과 증가액 중에서 고릅니다.
기한도 있습니다. 제617조에 따라 비용 상환 청구는 집을 돌려준 날부터 6개월 안에 해야 합니다. 이사 정리에 쫓겨 넘기기 쉬운 기간입니다.
지금 모아 둘 자료
· 입주할 때 오간 돈의 이체 내역과 메모
· 매달 보낸 돈이 있다면 그 명목과 금액
· 직접 들인 공사의 견적서와 영수증, 공사 전후 사진
· 반환 시기를 두고 주고받은 문자나 메신저 대화
정리
집을 쓰는 대가로 차임을 주기로 했는지가 임대차와 사용대차를 가르는 기준입니다. 관리비나 공과금을 낸 정도로는 대가를 치렀다고 보기 어렵고, 그 경우 전입신고를 했어도 주택임대차보호법의 대항력이나 2년 보장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보증금을 맡긴 전세라면 등기가 없어도 같은 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가족 사이에 돈이 오갔다면 그 돈이 무엇이었는지부터 정리해야 합니다.
집을 비워 달라는 통지를 받았거나 보내야 하는 처지라면 이체 기록과 공사 내역을 모아 변호사와 함께 반환 시기와 정산 범위를 먼저 따져 보시기 바랍니다.
참조 조문
민법 제203조, 제609조, 제610조, 제611조, 제613조, 제614조, 제615조, 제617조, 제618조 · 주택임대차보호법 제2조, 제3조, 제4조, 제12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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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매달 20만 원씩 보냈는데 생활비 보조라고 적었습니다.
메모 하나로 결론이 정해지지는 않지만, 그 돈이 집을 쓰는 값이었다는 점을 보여 줄 다른 자료가 필요해집니다. 금액이 입주 시점부터 일정했는지, 집주인이 그 돈을 임대료로 신고하거나 언급한 적이 있는지를 확인해 보십시오.
무상으로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갔습니다.
사용대차라면 낙찰자에게 계속 살겠다고 주장할 근거가 없습니다. 다만 들어갈 때 맡긴 돈이 있다면 그 성격에 따라 배당을 요구할 여지를 따져 볼 수 있으니 배당요구 종기를 먼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빌려준 집을 돌려받고 싶은데 동생이 나가지 않습니다.
반환 시기가 되었거나 해지 사유가 있다는 점을 날짜를 정해 서면으로 알리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그래도 나가지 않으면 인도 청구 소송을 검토하게 되며, 그 사이 다른 사람에게 점유가 넘어가지 않도록 보전 조치를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제가 들인 인테리어 비용을 돌려받을 수 있나요?
집의 가치를 높인 공사이고 그 효과가 남아 있다면 상환을 청구할 여지가 있습니다. 집을 돌려준 날부터 6개월이라는 기한이 있으므로 영수증과 사진을 정리해 두고 반환 전에 미리 협의해 두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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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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