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 산자락에 전원주택을 사서 들어간 지 두 해째입니다. 집으로 오르는 길은 이웃 밭 가장자리를 따라 난 폭 3미터 흙길 하나뿐인데, 전 주인이 밭 주인과 통행 지역권을 설정하고 등기까지 해 두었다는 설명을 듣고 샀습니다. 그런데 올봄 그 밭을 새로 산 사람이 길 한가운데에 철제 울타리를 박고 농막 컨테이너를 내려놓았습니다. 택배 차도, 구급차도 들어오지 못합니다. 이럴 때 법은 길을 쓰는 쪽에게 분명한 무기를 하나 쥐여 줍니다.
등기된 통행로는 어떤 권리인가
민법은 이것을 지역권이라고 부릅니다.
제291조에 따르면 지역권자는 일정한 목적을 위해 남의 땅을 내 땅의 편익에 이용할 권리를 가집니다. 통행이 가장 흔한 목적이고, 물길을 끌어오거나 전망을 지키기 위해 설정하기도 합니다. 편익을 받는 내 땅을 요역지, 길이 지나가는 이웃 땅을 승역지라고 합니다.
이 권리는 계약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부동산 물권이므로 등기를 해야 효력이 생기고, 등기가 되면 땅 주인이 바뀌어도 권리가 따라 남습니다. 승역지 등기기록에는 부동산등기법 제70조에 따라 설정 목적, 범위, 요역지가 적히고, 땅 일부에만 설정했다면 그 부분을 표시한 도면 번호도 들어갑니다.
사례의 집이 기댈 근거는 바로 그 등기 한 줄입니다.
요역지와 승역지
요역지는 지역권의 덕을 보는 땅, 승역지는 그 부담을 지는 땅입니다. 통행 지역권이라면 길을 쓰는 집 쪽이 요역지, 길이 놓인 밭 쪽이 승역지입니다. 등기는 승역지 기록에 먼저 하고, 등기관이 요역지 기록에도 직권으로 그 사실을 적어 둡니다.
막은 사람에게 무엇을 요구할 수 있나
제301조는 소유물방해제거·방해예방청구권을 정한 제214조를 지역권에 준용합니다. 소유자가 자기 땅을 방해받을 때 쓰는 청구를 지역권자도 그대로 쓸 수 있다는 뜻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세 갈래입니다. 이미 놓인 울타리와 컨테이너는 치워 달라고 청구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길을 파헤치거나 차단기를 달겠다고 예고하는 경우라면 그런 행위를 하지 말라는 예방을 구하거나, 손해배상의 담보를 제공하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 눈여겨볼 점이 있습니다. 제301조는 제214조만 끌어오고 소유물반환청구권인 제213조는 준용하지 않습니다. 지역권은 땅을 차지하는 권리가 아니라 지나다니는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구의 내용도 길을 내놓으라는 것이 아니라 막은 것을 걷어 내라는 것이 됩니다. 소장의 청구취지를 쓸 때 이 차이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밭 주인이 바뀌었어도 통하나
통합니다. 등기가 되어 있다면 말입니다.
새 밭 주인은 흔히 자기는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역권은 전 주인과 맺은 채권적 약속이 아니라 승역지에 붙은 물권입니다. 땅을 산 사람은 등기부에 적힌 부담을 안고 산 것이고, 등기사항증명서 을구를 한 번만 떼어 보았어도 알 수 있었던 내용입니다.
설정 계약에서 밭 주인이 자기 비용으로 길을 고치거나 배수로를 놓아 주기로 했다면, 제298조에 따라 그 의무도 새 주인에게 넘어갑니다. 계약서에 그런 조항이 있었는지 전 주인에게서 받아 두는 편이 좋습니다.
어디까지가 방해로 인정되나
기준은 등기된 범위입니다.
등기부와 도면에 폭 3미터로 적혀 있다면 그 3미터를 온전히 지나갈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 청구의 범위입니다. 그 바깥에 놓인 물건은 통행을 실제로 가로막지 않는 한 문제 삼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길 일부만 좁혀 차가 못 지나가게 했다면 전부를 막지 않았더라도 방해가 됩니다.
승역지 주인이 그 길을 같이 쓰는 것은 방해가 아닙니다. 제300조는 지역권 행사를 방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지역권자가 놓은 포장이나 배수관 같은 공작물을 승역지 소유자도 함께 쓸 수 있다고 정하고, 그 대신 이익을 보는 비율만큼 설치·보존 비용을 나누게 합니다. 경운기를 몰고 지나가는 정도까지 막을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등기가 없었다면 어떻게 달라지나
등기 없이 수십 년 써 온 길이라면 지역권이 아니라 제219조의 주위토지통행권을 따져야 합니다. 통로가 없어 공로에 나갈 수 없는 땅을 위해 법이 직접 인정하는 통행권입니다.
| 비교 | 등기된 통행지역권 | 주위토지통행권 |
|---|---|---|
| 생기는 방법 | 땅 주인끼리 설정 계약을 하고 등기 | 통로가 없는 땅이면 법률상 당연히 인정 |
| 길의 위치와 폭 | 등기된 범위와 도면대로 | 필요한 범위 안에서 손해가 가장 적은 곳 |
| 대가 | 설정 계약에서 정한 대로 | 통행지 소유자의 손해를 보상 |
| 다른 길이 새로 생기면 | 등기가 남아 있는 한 권리도 남음 | 필요성이 사라지면 다투어질 수 있음 |
| 막혔을 때 청구 | 방해 제거·예방, 손해배상 담보 | 통행 방해 금지를 구하는 소송 등 |
둘은 출발점이 다릅니다. 주위토지통행권은 필요한 범위 안에서 손해가 가장 적은 장소로 제한되고, 통행지 소유자의 손해를 보상해야 합니다. 다른 길이 생기면 필요성 자체가 다투어집니다. 등기된 지역권은 그런 다툼 없이 적힌 대로 주장할 수 있어 훨씬 단단합니다.
지금 무엇부터 하면 되나
울타리가 오래 서 있을수록 상대는 이미 정리된 일처럼 행동합니다. 순서를 정해 빨리 움직이는 편이 낫습니다.
- 승역지 등기사항증명서와 지역권 도면을 발급받아 범위와 위치를 확인합니다.
- 막힌 지점을 날짜가 나오게 사진과 영상으로 남기고, 택배·차량 출입이 끊긴 사정도 기록합니다.
- 등기 내용을 첨부해 철거를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냅니다. 기한을 구체적으로 적습니다.
- 응하지 않으면 통행 방해 금지 가처분을 검토합니다. 민사집행법 제300조의 임시의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이 쓰이며, 생활이 막힌 급박한 사정을 소명해야 합니다.
- 본안으로 방해물 철거와 통행 방해 금지를 구하는 소송을 내고, 손해가 있었다면 배상도 함께 청구합니다.
주의
직접 울타리를 뽑거나 컨테이너를 밀어내면 손괴 시비로 번질 수 있습니다. 권리가 분명해도 걷어 내는 일은 판결이나 가처분 결정을 받아 집행 절차로 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정리
등기된 통행 지역권은 승역지 주인이 바뀌어도 그대로 남는 물권입니다. 길을 막으면 지역권자는 방해물 제거와 방해 예방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요구의 내용은 땅을 내놓으라는 것이 아니라 막은 것을 걷어 내라는 것입니다. 새 주인이 몰랐다는 말은 등기 앞에서 힘이 약합니다.
다툼의 범위는 등기부와 도면에 적힌 폭과 위치가 정합니다. 등기가 없다면 주위토지통행권으로 다시 따져야 하므로, 먼저 등기사항증명서를 떼어 보고 증거를 모은 뒤 변호사와 가처분 여부부터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참조 조문
민법 제214조, 제219조, 제291조, 제298조, 제300조, 제301조 · 부동산등기법 제70조, 제71조 · 민사집행법 제300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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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새 밭 주인이 지역권 등기를 말소하라고 소송을 냈습니다.
설정 계약이 무효이거나 지역권이 소멸했다는 사정이 없다면 등기를 지울 근거가 없습니다. 오래 길을 쓰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으니, 그동안 실제로 통행해 온 기록을 함께 모아 두시기 바랍니다.
길에 차단기만 달고 열쇠를 주겠다고 합니다.
등기된 목적과 범위대로 지나다니는 데 지장이 없다면 다툼이 줄 수 있지만, 출입 시간을 제한하거나 열쇠를 회수할 수 있게 해 두었다면 방해로 볼 여지가 있습니다. 조건을 서면으로 받아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길 포장을 다시 해야 하는데 비용은 누가 내나요?
설정 계약에 승역지 소유자가 비용을 지기로 한 약정이 있으면 그에 따릅니다. 약정이 없고 승역지 소유자도 그 포장을 함께 쓴다면 이익을 보는 비율로 비용을 나누는 것이 원칙입니다.
가처분 신청에는 무엇을 내야 하나요?
등기사항증명서와 도면, 막힌 현장 사진, 생활에 생긴 지장을 보여 주는 자료가 기본입니다. 긴급성이 핵심이므로 응급차나 생필품 배송이 끊긴 사정 같은 구체적인 사실을 날짜별로 정리해 두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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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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